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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치겠다고 마음먹으면 대책없는 '구멍 숭숭' 사모펀드 감시

뉴스1

입력 2020.06.22 16:41

수정 2020.06.22 17:08

사기치겠다고 마음먹으면 대책없는 '구멍 숭숭' 사모펀드 감시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라임자산운용의 1조원대 환매 중단 사태에 이어 또 다시 투자자들의 돈이 묶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의 환매 중단 규모는 현재 384억원에서 향후 최대 5000억원대로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사모펀드 시장의 잇단 환매 중단 사태를 막기 위해 사무관리회사 등 펀드 관계사들의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징벌적 과징금 부과 등으로 사후 처벌 수위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환매가 중단된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채권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제25호, 26호'의 규모는 384억원이다. 판매 증권사는 NH투자증권(217억원)과 한국투자증권(167억원)이다.

만기 6개월인 이 펀드는 당초 공기업이나 관공서가 발주한 공사를 수주한 건설사나 IT(정보통신) 기업의 매출채권에 투자하기로 해놓고선 사실은 리스크가 높은 대부업체의 사모사채에 대부분 투자됐다는 사기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펀드 관계사들은 대부분 자기가 이번 사태를 사전에 막을 방법이 없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펀드 관계사로는 사무관리회사(한국예탁결제원), 수탁회사(하나은행), 판매사(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등이 있다.

한 판매사 관계자는 "옵티머스운용에 요청해 양수도 계약서와 채권양도 도달 통지 확인서를 받고, 펀드에 어떤 자산이 담겼는지를 볼 수 있는 펀드 명세서를 사무관리회사로부터 받아 양측의 자료를 비교했다"며 "그런데 펀드 명세서까지 위조됐다면 판매사가 펀드 부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결제원이 자산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운용사로부터 받은 기준가 산출자료 등을 토대로 펀드 기준가만 산출하기 때문에 조작, 허위 등을 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운용사가 사무관리회사에 전달한 운용내역과 실제 운용지시를 비교하는 식으로 수탁회사가 운용사에 대한 감시를 해야 하는데,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 영역에서는 수탁회사에 그런 의무가 없다"고 했다. 수탁회사는 운용사로부터 운용지시를 받아 자산을 매매하고 이를 보관·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펀드 자산이 바꿔치기 됐을 경우 펀드 관계사들이 사실상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 규제 체계 하에서는 수탁회사나 판매사 등이 사모펀드 관리운용을 감시할 책임이 없다"고 했다.

펀드 관계사간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재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사무관리회사가 수탁회사에 해당 자산이 뭐라고 기록돼있는지 확인하는 절차 등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게이트키퍼(gate keeper)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은 지난해 사모펀드 전수조사를 통해 옵티머스운용의 사모사채 비율이 높은 점 등을 보고 최근까지도 모니터링 해오고 있었다.

다만 사모펀드는 보유자산 등을 금감원에 보고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금감원이 옵티머스운용의 서류 위조 의혹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사태가 불거진 직후인 지난 19일부터 옵티머스운용 현장검사에 착수해 사실관계 등을 확인 중이다.

2015년 규제 완화로 우후죽순으로 생긴 사모펀드의 과열을 막기 위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정재만 교수는 "사모펀드는 소수 전문가들이 투자하는 펀드인데, 현재 사모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사람들을 과연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공모펀드에는 여러 규제와 견제책이 있는데, 사모펀드에는 그런 게 없다. 공모펀드 규제를 사모펀드에도 적용하는 방안 등을 고민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세상에 좋은 물건이 항상 있는 게 아니다. 투자할 게 없어지니깐 사모펀드가 안 좋은 자산 쪽으로 갈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전문가가 아닌 거액 자산가가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드는 식의 제도 보완도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황세운 연구위원은 "사모펀드 시장에서 계속해서 사고가 터지니깐 금융당국이 지난 4월 진입방역을 높여놓은 상태다.
일단 이 규제의 효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형사상 책임을 더 강하게 묻는 등 사후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봤다.

한편 옵티머스운용은 딜 소싱(투자처 발굴) 과정을 맡았던 법무법인이 채권을 위조했다고 판매사와의 대책회의에서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재만 교수는 "자기 물건을 사면서 그게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고 샀다는 것은 운용사가 '나는 바보'라고 말하는 꼴"이라며 "운용사는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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