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정치적 중립이 시민단체의 생명이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22 17:14

수정 2020.06.22 17:14

비정부기구 어용화의 업보
윤미향 거취, 정치 공방 격화
후원금 줄어 애먼 단체 타격
[구본영 칼럼] 정치적 중립이 시민단체의 생명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가 다각도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 이후 불똥이 여러 갈래로 튀면서다. 전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후원금 유용 의혹으로 수사선상에 오르자 마포쉼터 소장이 비극적 선택을 했다. 기부금이 줄어 다른 애꿎은 시민단체들이 유탄을 맞고 있다.

21대 국회 개원이 요란한 정치적 변주도 일으키고 있다. 민주당은 "의혹이 어느 정도 소명됐다"며 내부 입단속 중이다.
그사이 극렬 지지층이 문제제기를 한 이 할머니를 토착왜구로 공격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미래통합당은 '윤미향 방지법' 발의와 보조금 지급제도 개편 촉구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기부금 모금활동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윤 의원과 정의연 활동의 공(功)은 인정하지만 회계부정 등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지적한 회계처리의 불투명성은 정의연의 과(過)의 일부분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맥락에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이번에도 정곡을 찔렀다. '윤미향 파문'을 두고 "제3섹터라 할 수 있는 시민단체가 어용이 됐다"고 지적하면서다. 시민운동의 정치화로 인한 부작용이 문제의 본질이란 뜻이다. 현 정부 들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출신이 당·정·청 요직에 대거 발탁됐다. 매우 한국적 현상이다. 미국에선 "정부 감시를 위해 나랏돈 안 받는다"는 원칙을 지키려는 시민단체가 부지기수라니 말이다.

비(非)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NGO)에서 비(非), 즉 Non이란 접두어가 빠지면 정부기구가 된다. 그렇게 시민단체가 관변화하면 본래 설립 취지는 퇴색하기 마련이다. 진보성향 원로 사회학자인 한상진 명예교수(서울대) 말마따나 "(더는) 시민사회를 대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이 권력 감시는커녕 자리를 얻는 데 급급하고, 돌봄의 대상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란 뜻이다. 과거 5공 시절 새마을운동중앙회,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등 단체들이 그런 경로를 밟았다.

이번에 곪아터진 정의연(전신 정신대대책협의회)의 행로도 마찬가지다. 적잖은 간부가 초심을 잊고 금배지나 장관, 청와대 요직 등을 향해 달려갔다. 그사이 일제 피해자인 할머니들 손에 쥐여줬어야 할 후원금이나 정부 지원금은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오죽하면 이 할머니가 "지난 30년간 이용만 당했다"고 했겠나.

문득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리요"라는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무릇 시민단체는 권력을 상대로 까칠한 '파수견(Watch dog)' 역할을 할 때 존재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러지 않고 정치적 중립성을 저버리는 순간 권력의 '호위견(Guard dog)'으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윤 의원의 의혹 그 자체보다 정의연을 한 식구인 양 여기는 여당의 자세가 더 위험해 보인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공동운명체로 엮이게 되면 그 안의 '시민'이 소외되는 건 뻔한 결말이다. 이로 인한 여당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국가 전체에도 장기적으로 해로운 일일 것이다.
부디 176석 거대 여당이 윤 의원을 감싸는 데만 급급해 정의연과 시민을 격리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