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가상자산, 호부호형을 허하노라!"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23 17:52

수정 2020.06.23 17:52

[이구순의 느린 걸음] "가상자산, 호부호형을 허하노라!"
"벤처캐피털의 투자조건이 가상자산 관련 사업을 모두 접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을 억지로 분리할 수 없는 기술적 특성 같은 것을 설명할 틈도 없이 투자유치를 위해 모든 분야에서 가상자산을 지우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는 국내 한 블록체인 기업 대표가 씁쓸하게 털어놓은 말이다.

우리 정부는 '가상자산'이라는 말을 금기어로 취급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한때 가상자산은 투기수단으로 잘못 사용됐다. 비트코인 가격이 갑자기 폭등하면서 일반인들이 투기에 몰렸고, 사업성 검증조차 할 수 없는 계획서 한 장으로 코인을 발행해 투자금을 끌어모으고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악덕기업도 있었다.
결국 정부는 가상자산 사업을 사기로, 가상자산은 투기로 미운털을 박았다.

그래서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가상자산을 홍길동에 비유하곤 한다. 분명 블록체인 기술과 함께 존재하는 기술이지만 블록체인 기술의 산물이라 부를 수 없고, 신박한 신사업 계획이 있어도 드러내놓고 사업계획서를 내놓고 투자유치에 나설 수도 없다.

블록체인 기술의 큰 특징 중 하나가 기여도에 정확히 맞춘 보상이다. 사용자가 자신의 정보를 제공했을 때 정보의 가치에 맞춰, 파트너 회사가 사업에 기여했을 때 기여도에 맞춰 정확히 계산된 보상을 반드시 제공한다는 신뢰가 보장되는 기술이 블록체인이다. 보상의 수단이 가상자산이다.

그런데도 블록체인 기업들은 토큰을 보상한다는 말을 할 수 없다. 정부 눈치가 보여서다.

금융회사도, 벤처캐피털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신산업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정부 눈치를 살피느라 선뜻 나서지 못한다. 외국에서 시장이 급성장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발만 구른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가 내년에 적용할 세금정책을 7월 중 발표한다. 세금 정책에는 가상자산 투자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이 포함된다고 한다.

내년 3월에는 가상자산 사업자가 사용자들의 거래내역을 금융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법률도 시행된다. 정부가 가상자산의 흐름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적정 세금이 매겨질 것이니 일반인들이 무작정 투기에 나설 걱정도 덜 수 있게 됐다. 가상자산의 흐름을 보고받을 수 있으니 못된 사기수법을 쓰는 기업주는 찾아내 처벌할 수 있다. 범죄수익은 찾아내 몰수할 수도 있다.

이 정도 되면 정부도 이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상자산 투기와 사기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적 수단을 갖게 됐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정부가 가상자산에 호부호형을 허용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가상자산이 신산업에서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놔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중국에서는 정부 차원의 디지털화폐 발행을 공식화하고 있고, 페이스북은 미국 대표기업으로서 가상자산을 발행하겠다고 나선다. 가상자산은 가장 먼저 금융산업 혁신을 이끌어낼 트리거로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은행도 디지털화폐 기술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렇게 급변하고 있는 블록체인·가상자산 시장에서 산업과 기술의 흐름에 민감한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제 정부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육성하겠다고 나서는 정부가 가상자산의 산업적 가능성을 인정한다고 한마디 하면 바로 사업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


"가상자산, 이제는 호부호형을 허하노라!" 하는 한마디로 정부가 블록체인 신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열어줄 차례다.

cafe9@fnnews.com 블록체인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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