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요즘 지자체, 너무 무섭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24 17:12

수정 2020.06.24 17:12

[특별기고] 요즘 지자체, 너무 무섭다
최근 대한항공의 송현동 땅 매각과 관련해 쏟아지는 뉴스들은 점입가경이다. 처음 발단은 대한항공이 코로나로 인한 경영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땅을 팔기로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서울시가 이 땅을 공원지구로 지정 고시했다. 땅값이 거의 반값으로 떨어지고 아무도 응찰을 안했다. 여론이 안 좋아지니 정책이 조금씩 변한다. 땅값을 반 정도로 후려쳤다가 다시 올렸다가, 잔금을 2년 후에 주겠다고 하다가 바로 주겠다고 선심을 쓰는 척한다.
그야말로 여론의 향방에 따라 왔다갔다 한다.

기업분석 컨설팅 대표인 P는 이 사건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했다. "기업의 일차 주인은 주주입니다. 서울시의 이러한 행태는 주주의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난 주주의 권익침해이지요." 최근 주주행동파는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 추궁, 투명성 제고 등 경영에 적극 개입해 주주가치를 높이는 행동을 실천하고 있다. 이 사건은 대한항공 주주들이 모여서 서울시를 대상으로 집단소송을 걸어도 될 정도라고도 했다. 또 다른 한편에는 회사 경영위기로 영향을 받는 직원들이 있다. 지난 3월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서 만난 여승무원은 코로나 때문에 비행일수가 줄어서 봉급이 줄었다며 일을 더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근로자에게 직장은 곧 생존이며, 주주에게 자산매각은 보유주식 가치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사실 내가 이 글을 쓴다고 하니 주변에서 다 말렸다. 친기업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걱정들이었다. 그동안 기업들이 잘못한 일이 많아서 그런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친기업은 나쁜 의미로 통용되는 기류가 있다. 기업이 위법한 일을 하면 법에 근거해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기업, 특히 대기업은 나쁘다고 이분법적으로 관념화하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상식적이지 않다. 기업이 없으면 일자리도 없고 복지도 없다. 또, 오해받을까 봐 미리 밝힌다. 나는 대한항공과 아무 관련이 없다. 관련이 있다면 회원혜택이 편리해 30년째 이용하는 수많은 승객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과거 서울시장들이 청계천 재생사업 같은 각종 재개발사업으로 표를 얻고 대권까지 장악한 선례가 있으니 학습효과가 이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위기에 빠진 기업의 목줄을 조여서라도 꼭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진정성이 있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잘 한 것도 있다. 광화문사거리에 횡단보도가 생기고, 서울 곳곳에 쉴 공간이 늘었다. 이러한 재개발사업은 개인과 기업의 사유재산권을 보장해주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인·허가권으로 발현되는 공권력의 힘은 지금 자유경제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는 듯하다. 기업에 건설자금을 요청하는 행태도 이제는 근절돼야 한다. 최근의 사례로 롯데그룹은 영도대교 복원사업과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각각 1100억원, 1000억원을 지원했다. 자발적이었을까? '지역사회와 시민을 위하여'로 포장된 공권력이 재정지원을 요구한다면 거부할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건설사업은 기업의 도움이 아니라 국가나 지자체 예산에서 확보되는 것이 원칙이고 정당한 방법이다. 우리가 세금을 내고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와 같은 행태들은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마음이 불편하고 우려스럽다. 기업의 재산권 침해가 당연시되는 세상이라면, 개인의 권리도 침해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공권력은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는 헌법에서 명시된 것처럼 사유재산권이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니까.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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