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아이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폭력 고리 끊으려면 인식의 뿌리부터 바꿔야" [아동학대 더이상은 안된다]

이병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24 17:19

수정 2020.07.01 17:02

<1부> 악순환 반복되는 아동폭력
1. 전문가 진단
어린 시절 학대받은 경험이
잘못된 방식의 양육으로 대물림 가능성
신체적인 폭력만 학대 아냐
싸우는 형제 집밖으로 쫓아내거나
또래끼리 비교하는 것도 해당
가벼운 훈육에서 시작되는 경우 많아
학대받던 집으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원가정 보호원칙'도 수정해야
"아이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폭력 고리 끊으려면 인식의 뿌리부터 바꿔야" [아동학대 더이상은 안된다]
충남 천안의 9세 어린이 학대 사망사건을 전후로 유사 사건이 잇따르면서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각심은 지난 2013년 연이어 발생한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건, 울산 여아 학대 사건에서 본격화됐다.

이후 아동학대 사망 땐 최대 무기징역으로 처벌하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 '고준희양 사망사건'이 일어나며 국민에게 충격을 줬고, 이후에도 유사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사회의 미래인 아동들이 무자비한 폭력의 그늘에 방치됐다는 우려가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어린이 학대 사망 사건과 관련, "위기의 아동을 사전에 확인하는 제도가 잘 작동되는지 잘 살펴보라"고 지시하는 등 정부 차원의 전반적인 점검이 예상된다.

이에 본지는 국내 아동학대 실태 현주소를 짚어보고 구체적 해법을 모색하는 '아동학대 더이상은 안된다'라는 주제의 시리즈를 준비했다.

엽기적인 아동학대 사건의 사슬을 끊기 위해 보호기관과 사법, 공교육 체계가 맞물린 다차원적 시스템 공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본지가 지난 17일부터 22일까지 아동보호 전문기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방안 조사 결과 이 같은 진단이 제시됐다.

전문가들은 1차적으로 아동을 '가정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우리 사회의 감수성을 극복하는 게 아동학대 근절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동폭력을 넘어 욕설과 인격모독 등 폭넓게 퍼진 아동학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위기가정의 부모에게 아동을 맡기는 단계를 넘어 국가가 적극 개입할 수 있는 방안도 동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전문가 진단에는 김영미 한국여성변호사회 아동청소년특별위원, 서인숙 부산시 아동보호종합센터장, 신정찬 한국아동복지협회장, 윤혜미 아동권리보장원장,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가나다순) 등이 참여했다.

―2018년 고준희양 사망사건 이후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원인은.

▲정태영=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증진 활동을 통해 신고건수가 늘면서 더 많은 학대사례가 가정 밖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아동에 대한 체벌을 용인하고 폭력을 방조하는 우리 사회의 견고한 통념과 제도 역시 원인이다.

▲김영미=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전 국민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3년 울산과 칠곡에서 발생한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처벌특례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동학대 사건이 계속되는 이유는 아동을 한 명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소유물로 여기거나 아동에 대한 이해와 양육태도 부족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아동학대는 반인륜적 범죄로 간주된다. 아동학대가 우리 사회의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윤혜미=아동학대의 사회적 영향력은 전 세대와 다양한 범죄를 아우를 만큼 파급력이 크다. 어린 시절 학대의 경험은 학령기 혹은 청소년기 학교폭력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성인기 데이트폭력, 배우자·가정 폭력을 야기할 확률이 높다. 폭력의 악순환이 문제인 것이다.

▲서인숙=가정에서 아동학대로 건강한 대인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아동은 또래 관계에서도 왕따 혹은 학교폭력에 연루될 우려가 있다. 본인이 기억하는 잘못된 방식으로 자녀를 양육하면서 학대를 대물림할 우려도 있다. 중범죄자들 중에서도 성장기 아동학대를 경험한 경우가 종종 있다.

▲신정찬=아동의 정신적인 성장과 사회성 등 발달단계의 전반에 걸쳐 발달이 둔화돼 향후 사회적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많은 애로가 발생한다. 아울러 그가 속한 사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아동학대의 방식은 다양하다. 아동학대의 잔인함이 현장에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가.

▲윤혜미=아동학대의 범주는 넓다. 신체적 상해뿐 아니라 소리를 지르거나 회초리를 든다든지, 형제간 혹은 또래 간 비교하는 행위들이 어린 시절에는 상당한 충격과 상처가 되기 때문에 경미한 사건도 아동학대로 볼 수 있다.

▲정태영=안전한 체벌은 없다. 연구에 따르면 체벌을 하는 부모 다섯 명 중 두 명은 자신의 뜻했던 강도와 다르게 아이를 때린다. 체벌이 반복될 경우 체벌에 사용하는 힘이 점점 세진다고 한다. 아이들이 부상하거나 학대가 사망으로 이어진 사건들도 가벼운 훈육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다.

▲서인숙=사소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아동학대 사례로 판정되는 경우도 많다. 부부싸움에 아이들을 노출시킨 부모나 심하게 장난치고 싸우는 형제를 집 밖으로 쫓아낸 아빠 및 아이를 이유 없이 3일 이상 등교시키지 않는 부모님 등을 모두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아동학대 사례로 본다.

▲김영미=가장 많은 유형은 신체적 학대다. 공부를 안해서, 밥을 안 먹어서, 동생과 싸워서 등 사소한 이유도 다양하다. 욕설, 인격모독 등의 정서적 학대는 신체적 학대와 동반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에 노출시키거나, 열악한 상황에 방치하는 것도 정서적 학대다. 자녀를 성적인 대상으로 삼아 성학대하는 사례들도 상당했다.

―아동학대를 막지 못하는 법적·제도적 문제점를 짚는다면.

▲윤혜미=2014년 아동학대처벌법 시행과 각종 학대 예방대책으로 관련 법적·제도적 기반은 어느 정도 마련됐다고 본다. 다만 실제 현장에서 원활하게 운영되려면 질적인 측면에 관심을 두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 전국에 72개의 학대피해아동쉼터가 있는데, 현재 수준으론 부족하다.

▲정태영=필요하다면 일정 부분 국가가 위기가정 지원과 아동보호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복지사각지대 발굴시스템과 e아동행복지원시스템 연계를 통한 데이터로 위기가정을 촘촘하게 찾아내 위기가정의 아동이 학대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서인숙=아동학대 발견 확률이 높은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의 아동학대 신고 비율이 다소 낮다는 점아 아쉽다. 2015년 주요 국가별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신고비율이 호주 73%, 일본 68%, 미국 58%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29.4%에 그쳤다. 필요시에는 더 적극적인 신고자 보호방법도 마련돼야 한다.

▲신정찬=우선 아동복지법 전반에 흐르고 있는 '원가정보호원칙'을 수정해야 한다. 아동 재학대 건수는 2018년 기준 10.3%에 달한다. 원가정에 대한 충분한 평가와 부모교육을 통해 아동의 안전이 충분히 보장될 때 원가정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법 915조의 부모 징계권 삭제 및 개정도 필요하다.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을 짚는다면.

▲윤혜미=아동학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차원의 시스템이 공조를 이뤄야 한다. 피해아동 유형에 따른 보호시설 구축 시스템이 더욱 필요하고, 집중적이고 전문적 조사와 사례관리를 위한 적정 인원·예산 등 업무운영체계 시스템이 더욱 잘 마련돼야 한다. 사법 체계, 공교육 체계와 효율적 공조시스템도 중요하다.

▲서인숙=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전 국민적 감수성이 향상될 필요가 있다.
이번 천안, 창녕 사건 이후로 민법상 징계권을 없애거나 수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은데, 그동안 우리 사회 속에 당연시돼오던 아동학대의 인식개선에 큰 전환점이라고 본다.

▲김영미='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격언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실천할 필요가 있다.
자녀의 양육을 오로지 부모에게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잘 자라도록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bhoon@fnnews.com 이병훈 유선준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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