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기본소득 때가 아니다 - 스위스의 경우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29 17:35

수정 2020.06.29 17:35

복지를 깡그리 없애는 대신
월 320만원 지급 국민투표
이민자들 급증 우려에 퇴짜
[곽인찬 칼럼] 기본소득 때가 아니다 - 스위스의 경우
기본소득을 말할 때 보통 두 나라 사례를 든다. 핀란드와 스위스. 핀란드는 2년 실험을 했고, 스위스는 국민투표에 부쳤다. 핀란드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실업수당 대신 월 560유로(약 76만원)를 주면서 일자리가 어떻게 바뀌나 봤다. 일자리는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이럴 거면 헛심을 쓸 필요가 없었다.
핀란드 기본소득은 없던 일이 됐다.

4년 전 스위스 국민투표는 거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유권자 77%가 반대했다. 제안은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스위스는 직접민주주의를 한다. 10만명 넘는 유권자가 서명하면 헌법 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찬성론자들은 기본소득을 헌법에 넣으려 했으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스위스 기본소득안은 핀란드안보다 더 야심만만했다. 기존 복지 혜택을 기본소득 하나로 퉁치려고 했다. 자연 금액도 핀란드보다 셌다. 성인은 월 2500스위스프랑(약 320만원), 어린이는 625스위스프랑(약 80만원) 수준이다. 이 돈을 잘살든 못살든 모든 스위스 사람에게 주자고 했다.

이렇게 하면 한해 2080억 스위스프랑(약 264조원)이 든다. 기본소득 찬성파는 재원 조달 통로로 크게 두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복지비 통합, 다른 하나는 세금이다. 정부는 복지비를 한데 모아도 250억 스위스프랑(약 32조원)이 빌 걸로 봤다. 결국 증세가 불가피하다.

스위스 정부는 개정안 반대 운동을 펼쳤다. 논리가 흥미롭다. 먼저 스위스는 사회보장 제도를 통해 이미 복지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일할 의욕을 잃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놀고먹는 이른바 복지의 여왕(Welfare Queen)이 나타난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고질적인 노동력 부족이 더 심해진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스위스는 860만명 인구 가운데 외국인 비율이 30%에 육박한다. 그래도 일손이 달려 실업률은 늘 유럽 최저다. 결정구는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조세저항은 인간의 본능이니까.

정치권도 반대 대열에 가세했다. 4년 전 영국 BBC 방송은 스위스 우파 정치인의 발언을 전했다. 그는 "스위스가 섬이라면 모를까 여러나라로 둘러싸인 지금은 안 된다"며 "기본소득을 주면 전 세계 노동자들이 스위스로 몰려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진짜, 우리돈으로 월 300만원 넘게 준다면 한국에서도 스위스 이민 붐이 일지 모른다.

확인차 친분이 있는 스위스 지인한테도 물었다. 스위스에서 대를 이어 시계업을 하는 그는 기본소득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세가지 이유가 똑 부러진다. 모든 이에게 돈을 주는 기본소득은 올바른 연대(連帶)가 아니다, 줄 돈이 없다, 동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이민자가 몰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인의 근면성은 세계가 알아준다. 빠릿빠릿한 독일인이 게을러 보일 정도다. 그러니 기본소득이 씨알이 먹힐 리가 없다.

스위스는 부자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이 8만달러가 넘는다. 유엔이 발표한 2020 세계 행복보고서 순위는 3위다. 1위는 핀란드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까마득한 아래 61위다. 스위스·핀란드는 우리 눈으로 보면 남부러울 게 없는 나라들이다. 사회적 연대감, 신뢰자본도 튼튼하다. 이런 나라들조차 기본소득에 X표를 긋는다.

솔직해지자. 신뢰자본으로 보나 공동체의식으로 보나 한국은 스위스·핀란드보다 한참 아래다.
사회안전망도 성글다. 지금은 복지 그물을 더 촘촘히 짤 때다.
복지 후진국 한국에 기본소득은 당최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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