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기자수첩] 피고인을 춤추게 만드는 집행유예

파이낸셜뉴스 채널구독이벤트
[기자수첩] 피고인을 춤추게 만드는 집행유예
얼마전 항소심 재판을 지켜보다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피고인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기뻐 파티를 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들었다. 고 구하라씨를 폭행하고 성관계 동영상으로 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전 남친 최종범씨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것에 따른 행동이었다.

집행유예는 유죄를 인정하더라도, 형의 집행을 미뤄 사실상 형을 살지 않게 하는 선고다. 법률사전을 보면 이는 피고인의 정상적인 사회복귀 유도 및 범죄예방을 위함이며, 별도의 보호관찰 및 사회봉사·수강명령을 할 수 있다고 돼있다. 과연 집행유예가 사회적으로 범죄예방의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어느 판사의 말처럼 재판부의 판결은 하나하나가 모여 이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풀어낼 시금석이 되는 것이다.

기준이 명확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사법부의 판결을 신뢰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차분히 재판부의 판결을 믿고 기다릴 것이다.

범죄자에게 정상적인 사회복귀의 '기회'를 주는 집행유예가 과연 이 사회 전체에 득이 되는 일일까?

물론 누군가를 위해 혹은 절박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지가 범죄였거나 갱생의 여지가 커 보이는 경우 등 집행유예를 적절히 사용한 예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구성원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재판부의 '집행유예' 남발은 결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싹트게 한다. 일종의 '죄를 지어도 잘하면 형을 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라는 생각이 자리잡는 것이다.

재판부는 최씨에 대해 상해, 강요, 재물손괴, 협박 등의 죄명을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성폭력특별법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의 경우 무죄로 판단했다. 최씨가 구씨 의사에 반해 몰래 찍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무죄 판단 이유였다.


1심 재판부의 판결을 바꿔 말하면 대한민국에서는 협박하고, 강요하고, 폭행으로 재물을 파손해도 형을 살지 않을 수 있다. 또 타인의 사생활을 몰래 촬영하더라도 상대가 반하는 의사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무죄다. 재판부는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것이 국민들의 화합과 갈등을 풀어낼 기준마련을 함께 유예하는 것은 아닐지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pja@fnnews.com 박지애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