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유예는 유죄를 인정하더라도, 형의 집행을 미뤄 사실상 형을 살지 않게 하는 선고다. 법률사전을 보면 이는 피고인의 정상적인 사회복귀 유도 및 범죄예방을 위함이며, 별도의 보호관찰 및 사회봉사·수강명령을 할 수 있다고 돼있다. 과연 집행유예가 사회적으로 범죄예방의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어느 판사의 말처럼 재판부의 판결은 하나하나가 모여 이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풀어낼 시금석이 되는 것이다.
기준이 명확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사법부의 판결을 신뢰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차분히 재판부의 판결을 믿고 기다릴 것이다.
범죄자에게 정상적인 사회복귀의 '기회'를 주는 집행유예가 과연 이 사회 전체에 득이 되는 일일까?
물론 누군가를 위해 혹은 절박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지가 범죄였거나 갱생의 여지가 커 보이는 경우 등 집행유예를 적절히 사용한 예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구성원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재판부의 '집행유예' 남발은 결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싹트게 한다. 일종의 '죄를 지어도 잘하면 형을 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라는 생각이 자리잡는 것이다.
재판부는 최씨에 대해 상해, 강요, 재물손괴, 협박 등의 죄명을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성폭력특별법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의 경우 무죄로 판단했다. 최씨가 구씨 의사에 반해 몰래 찍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무죄 판단 이유였다.
1심 재판부의 판결을 바꿔 말하면 대한민국에서는 협박하고, 강요하고, 폭행으로 재물을 파손해도 형을 살지 않을 수 있다. 또 타인의 사생활을 몰래 촬영하더라도 상대가 반하는 의사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무죄다. 재판부는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것이 국민들의 화합과 갈등을 풀어낼 기준마련을 함께 유예하는 것은 아닐지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pja@fnnews.com 박지애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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