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관련자들 유죄는 인정됐는데…정경심 증거은닉 교사는 무죄?

뉴스1

입력 2020.07.05 08:00

수정 2020.07.05 08:00

정경심 동양대 교수. 2020.7.2/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 2020.7.2/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오병윤 옛 통합진보당 의원. © News1 성동훈 기자
오병윤 옛 통합진보당 의원. © News1 성동훈 기자


경북 영주시 풍기읍 동양대학교 캠퍼스 전경. 2019.9.4/뉴스1 © News1 김대벽 기자
경북 영주시 풍기읍 동양대학교 캠퍼스 전경. 2019.9.4/뉴스1 © News1 김대벽 기자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사모펀드 비리 의혹이 터지자 관련 증거 은닉·인멸을 교사했다는 혐의에 가담해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의 유죄가 인정되며 정 교수 본인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정 교수 재판에선 관련자들 유죄와 상관없이 증거은닉 교사의 일부 혐의가 무죄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관련자들 재판서 드러난 정경심의 증거은닉·인멸 교사

정 교수가 받는 증거은닉·인멸 관련 혐의 중 정 교수와 엮여 기소된 사람은 한국투자증권 프라이빗뱅커(PB) 김경록씨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5촌 조카 조범동씨다. 김씨는 정 교수 지시로 관련 증거를 은닉한 혐의, 조씨는 정 교수와 함께 사모펀드 관련 증거를 은닉·인멸한 혐의를 받았다.

두 사람의 1심 재판에서 모두 정 교수에게 불리한 판단이 나왔다.

김씨에 대해 법원은 Δ정 교수 지시로 하드디스크 교체 Δ교체한 하드디스크를 정 교수로부터 받아 차에 보관 Δ정 교수와 함께 동양대로 가 교수실 컴퓨터를 가져와 보관한 사실을 인정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정 교수의 지시'가 있었다는 판단은 정 교수에게 불리한 사실이 인정된 것이다.

사모펀드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관련 코링크 자료를 코링크 직원들이 삭제하도록 한 증거인멸·은닉 교사 혐의를 받는 조씨도 유죄가 인정됐다. 조씨의 1심 재판부는 정 교수를 조씨의 해당 혐의의 공범으로 봤다.

◇"정경심, 증거은닉 교사 인정되지만 처벌 어렵다"

그러나 실제 정 교수가 김씨에게 증거인멸을 시킨 혐의는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다수 의견이다.

왜 법조인들은 김씨의 증거은닉 혐의가 인정됐는데도 정 교수의 증거은닉 교사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은 낮게 봤을까. 정 교수가 김씨에게 증거은닉을 시키면서 스스로 은닉에 가담한 정황들이 드러나서다.

증거은닉·인멸·위조죄는 '타인'의 형사사건 증거를 은닉·인멸·위조한 경우 처벌하고, 자신의 죄와 관련한 증거에 대해 그렇게 했을 땐 처벌하지 않는다. 이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의 발현으로 봐서 형사처벌하진 않는 것이다.

증거은닉과 관련한 대표적 사건이 있다. 정치자금법 위반 및 증거은닉 혐의 등으로 기소된 옛 통합진보당 오병윤 전 의원 사건이다. 정 교수 변호인인 김칠준 법무법인 다산 변호사가 과거 이 사건도 맡았다.

오 전 의원은 2010년 2월 정당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와 투표시스템 서버를 압수수색하자 당원 정보가 담긴 서버 하드디스크를 빼내라고 지시하고, 이를 건네받아 민주노동당 당사에 보관해 증거를 은닉한 혐의를 받았다.

1심은 증거은닉 혐의는 무죄로 봤다. 그러자 검찰은 2심에서 증거은닉 교사 혐의를 예비로 추가했다. 2심 재판부는 오 전 의원이 직접 증거인멸에 가담한 측면이 있어 교사범으로 처벌하긴 어렵다면서도, 증거인멸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2심은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은닉하는 행위를 한 부분은 처벌하지 않더라도, 제3자가 범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은닉하는 행위에 가담한 부분은 제3자와의 공동정범 형태로 증거은닉죄의 죄책을 부담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증거은닉의 공동정범과 교사범은 같이 증거를 은닉하는 건지, 지시만 하는 건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 함께 증거를 은닉해 교사범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증거은닉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하는 게 합당하다고 했다.

오히려 증거은닉을 교사한 뒤 실행행위까지 분담해 벌을 줄 필요성이 높아졌는데도 교사범으로도, 증거은닉 공동정범으로도 처벌하지 못하는 것은 형벌체계상 모순이 생긴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2심이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라도 이를 타인과 공동해 은닉하면 증거은닉 공동정범이 된다는 이유로 오 전 의원에 대한 주위적 공소사실인 증거은닉을 유죄로 판단한 건 법리오해"라고 판단했다.

최근 조 전 장관 일가 사건을 맡고 있는 재판부들이 증거인멸·은닉·위조 혐의에 관해 "교사범은 처벌 가능하지만 공동정범은 처벌이 안 된다"며 검찰에 공소장 특정을 요구한 게 이 대법원 판결에 따른 조치다.

정리하면 증거은닉 등을 ①자신이 직접 한 경우 ②제3자에게 시킨 경우 ③제3자에게 시키면서 자신도 함께 증거은닉에 참여한, 세 가지 경우가 존재할 수 있는데 ①과 ③은 증거은닉 등의 공범이나 교사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경록과 함께 PC 옮긴 정경심, 증거은닉 공범…"처벌 어렵다"

다시 정 교수 사건으로 돌아오면, 유죄로 인정된 김씨의 3가지 행위 중 '정 교수가 김씨와 동양대로 가서 컴퓨터를 함께 들고 나와 은닉한 점' 등은 ③에 해당할 여지가 충분해 대법원 판례에 따라 무죄가 날 수 있는 것이다.

재경지법 한 판사는 "정 교수가 김씨와 함께 동양대로 가 컴퓨터를 들고 나오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힌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며 "정 교수도 증거은닉에 함께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김씨는 증거은닉으로 처벌받았지만, 김씨에게 증거은닉을 시킨 정 교수는 은닉행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처벌이 어렵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이런 경우 증거인멸을 지시받는 사람만 처벌받아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오 전 의원 2심 재판부도 이 점을 인식해 증거은닉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정 교수 1심 재판부가 대법원 판례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오 전 의원 2심 재판부처럼 판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씨 사건에서 정 교수가 공범으로 인정된 건 증거인멸·은닉죄의 공범이 아니라 교사범의 공범이기 때문에 그의 1심 결론은 정 교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대법원 판례상 범인 자신이 한 증거은닉은 형사소송의 피고인 방어권을 인정하는 취지와 상충해 처벌대상이 아니라서, 원칙적으로 증거은닉 등을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도 처벌받지 않는다.


따라서 정 교수 측이 증거은닉·인멸 행위가 방어권의 한계를 넘지 않는다는 입증에 성공하면 무죄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긴 하다. 정 교수 측 변호인은 지난 2일 재판이 끝난 뒤 이에 대해 "조씨가 다투지 않았던 부분"이라며 "우리 나름대로 주장하고 입증할 것"이라고 정 교수 재판에서 다투겠단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조씨 혐의가 인정되고 공소장에 나온 정 교수 행위가 방어권의 한계 안이라고 볼 수 없어 이 부분이 무죄가 나올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