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평화 쇼 뒤에 찾아온 핵 그림자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06 17:30

수정 2020.07.06 18:41

北 연락사무소 파괴 패악질
南은 아무 소리 못하고 침묵
비핵화 없는 평화는 신기루
[구본영 칼럼] 평화 쇼 뒤에 찾아온 핵 그림자
3년간 공들인 탑이 무너졌다고 해야겠다. 지난 6월 16일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순간이 그랬다. 수백억 예산을 들인 건물이 통째로 날아가면서 '판문점 선언' 등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산산조각 나고 만 것이다.

이후 북한 정권은 갈지자 행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미 협상 중재 의지에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찬물을 끼얹고 나왔다. 청와대가 외교안보라인 개편을 단행한 다음 날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면서다.
그런가 하면 김여정 제1부부장이 주도한 대남전단 살포와 확성기 재설치 계획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일단 보류했다. 북핵협상 복귀와는 무관한 행보다. 현 시점에서 대북제재 철회라는 목표를 이룰 순 없고, 대남 심리전도 해봤자 외려 손해임을 알아챈 결과일 뿐이어서다.

미국 조야는 요즘 벌집 쑤신 분위기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신간 '그것이 일어난 방' 탓이다. 여기에 우리의 눈길을 끄는 대목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북한 비핵화 협상이 한국의 창조물이라며 스페인의 구애 춤인 판당고를 끌어댄 부분이다. 최근 북한의 태도를 보면 그의 비유가 그럴싸해 보인다. 북측의 비핵화 의지를 전제로 밀어붙인 9·19 남북군사합의 등이 한낱 '짝사랑'이었음이 확인되면서다. 북 당국자가 공공연히 "비핵화는 X소리"라고 하는 판이니….

이를 뒤집어 보면 북한 정권이 비대칭 전력인 핵에 집착하는 속내가 읽힌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는 며칠 전 북한이 30~40개의 핵탄두를 비축했다고 추산했다. 제재 국면에서도 핵개발을 계속했다는 얘기다. 최근 평양의 특권층으로까지 번졌다는 식량난이 그 대가일까. 북한 내각은 지난 27일 평양 시민의 물과 채소 공급을 위한 '중대 결정'을 채택했다. 북측이 이제 와서 핵 미련을 떨쳐낼 소지도 희박하다. 국제공조에 묶인 남측으로부터 소량의 지원밖에 기대할 수 없어서다.

이제 북한이 본격적으로 핵보유국 행세를 할 낌새다. '핵 그림자 효과(nuclear shadow effect)'란 말이 있다. 직접 핵공격을 위협하진 않지만, 자신들이 핵을 갖고 있음을 인식하는 상대를 위축시켜 전략적 우위에 서는 효과다. 벌써 북핵 그림자가 어른댄다. 남측이 연락사무소 폭파 등 북측의 패악에도 아무 소리 못하고 있으니…

문제는 이런 북측의 '핵 갑질'을 제어할 수단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여권에서 그 누구도 '북 비핵화'를 말하지 않는 데서 읽히는 기류다. 이를 견인하는 수단인 북핵제재 완화 타령만 외려 무성하니 말이다. 설령 미국 대선 이후까지 한·미 공조가 유지된다 하더라도 그렇다. 미국이 약속한 '핵우산'의 기본개념은 "핵공격을 가하면 반드시 핵으로 보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핵사용을 억제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핵 그림자'까지 차단하진 못한다.

지난 3년간 남북 정상의 판문점 도보다리 회동 등 평화 이벤트는 넘쳤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마술사가 모자 속에서 평화의 비둘기를 꺼낸 꼴이었다. 북핵은 세습체제를 지키는 유일 수단일지 모르나 우리는 이를 '평화 파괴능력'으로 간주해야 정상이다.
'핵보유+제재 해제'가 북 세습정권의 지상목표라면? 북 비핵화에 대한 투철한 의지가 없는 '한반도 평화론'은 결국 신기루를 좇는 격일 수밖에 없을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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