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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선수 목숨 언제까지 버려야 하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07 16:39

수정 2020.07.07 16:39

[여의나루] 선수 목숨 언제까지 버려야 하나
경북경찰청은 지난 3일 광역수사대 2개 전담수사팀을 편성했다고 발표했다. 고 최숙현 선수에 대한 가혹행위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서다. 대구지검 역시 최 선수 사망 사건과 관련해 특별수사팀을 꾸렸다고 6일 밝혔다.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6일 회의를 열고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감독과 전 주장 선수의 영구제명을 결정했다. 6일 국회 문체위에서 의원들은 문화체육관광부 장차관 등 관계자들을 질타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이 문제를 "뿌리 뽑겠다"고 다짐했다.
국가인권위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체육계 인권보호를 위한 조사기구를 꾸리도록 하는 권고안을 6일 전원위원회에 상정했다. 지난해 12월 만든 안을 묵혔다가 재상정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최 선수의 극단적 선택 후 쏟아져 나온 '대책'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윤희 문체부 차관이 인권문제를 챙겨야 한다"고 지시한 것은 지난 2일이었다.

관련 기관이 총동원된 모양새다. 비통한 건 어느 곳도 비극을 막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최 선수 측은 지난 2월 가혹행위에 대해 직접 고소에 나섰다. 추가 폭로에 나선 동료 선수들은 경찰의 소극적 부실수사가 고인을 사지로 내몰았다고 한다. "경주경찰서 조사 때 담당 수사관이 "최 선수가 신고한 내용이 아닌 진술은 더 보탤 수 없다"며 일부 진술을 삭제했고, "벌금 20만~30만원에 그칠 것이다. 고소하지 않을 거면 말하지 말라"며 압력을 가했다는 게 선수들의 주장이다. 최 선수는 또 지난 4월 대한체육회에 진정을 냈지만 경주시나 협회와 마찬가지로 시간만 끌었을 뿐이다. 인권위가 진즉 대책을 발표했으면 최 선수 사건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안타깝지만 최 선수의 극단적 선택이 한편 이해가 된다. 그가 선수 생명을 걸고 폭로에 나설 때는 국가의 보호를 믿었을 것이다. 믿음이 배신당하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걸 보고 절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난해 심석희 선수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선수들에 대한 폭행과 성폭력의 실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피해자 보호와 인권침해 대응시스템, 학교체육 정상화와 엘리트 체육 개선 등의 대책이 제시됐다. 문제는 실천이 따르지 않은 것이다. 스포츠·시민단체들의 지적이 그것이다. 이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반복됐던 폭력·성폭력 사건의 처리 과정까지 늘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체육계의 변화를 얘기했다"면서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최 선수와 같은 비극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 역시 비슷한 과정을 밟을 것이다. 철저한 조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거창한 약속과 미약한 실천이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언제까지 선수들의 인생을 건 폭로, 생명을 건 충격요법에 의존해야 하는가. 먼저 "뿌리 뽑겠다"는 식의 공허한 약속을 믿지 말아야 한다. 뿌리 깊은 악습을 한 번에 청산할 수 있는 묘수는 없다. 지도자와 선수들의 인권교육 등 작은 것부터 실천에 나서야 한다. 스포츠계를 도매금으로 비난할 일은 아니지만 선수들은 외면한 채 이권화된 체육단체 수술도 중요하다. 우리는 아시안 게임, 올림픽, 월드컵까지 모두 유치한 바 있다. 더 이상 메달 수나 등수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국격과 연관이 없을뿐더러 설사 금빛이라도 폭력으로 이룬 성과는 외면당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일상적 제도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국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 정비가 비단 체육계에만 필요한 일이겠는가 돌아봐야 한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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