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한번도 쉬지 않았던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그는 누구인가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10 01:57

수정 2020.07.10 01:57

한번도 쉬지 않았던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그는 누구인가
[파이낸셜뉴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은 평소 자신에 대해 "조선시대 이래 최장수 서울시장"이라는 말을 종종 해왔다. 박 시장은 헌정 사상 최초의 3연임 서울시장이면서, 정치권에 입문한 이래 줄곧 잠재적인 대권후보로 꼽혔던 정치인이자, 행정가였다.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13세 때 작은 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양되는 등 남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성장한 뒤 1975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운동권 활동으로 투옥돼 제적됐다.

박 시장은 후에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런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12기, 문재인 대통령과 동기이다.
연수원 졸업 후 대구에서 검사 생활을 했지만 6개월만에 그만둔 뒤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후 박 시장은 줄곧 사회문제를 정면에서 다루는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참여연대 사무처장, 총선시민연대의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으며,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을 만들어 시민운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지난 2011년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박 시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압도적인 지지를 받던 시장 후보는 안철수 교수였다. 상대적으로 정치적 무명이었던 박 시장은 안 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그 뒤로도 항상 압도적인 표차로 두 번의 재선에 성공하면서 정치적인 전성기를 맞이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늑장 대응 보다 과잉대응이 낮다"는 명언으로 단숨에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차기 대권 후보로 대중들에게 낙점 받기도 했다.

국정 농단 사태로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 치러진 19대 대선에서는 대통령 후보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기대만큼 지지율이 따라주지 못해 결국 경선 중에 중도 포기 했다. 이후 서울시장 3선 도전으로 방향을 전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지지율과는 상관없이 차기 대권 잠룡으로 꾸준히 언급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수락 연설자리에 참석하면서 진보 내에서는 여전히 입지가 확실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박 시장은 이번 3연임이 마지막 서울시장 임기였다. 이 때문에 차기 대권은 늘 치열하게 살았던 박 시장의 마지막 도전이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예상이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박원순계' 의원을 13명 넘게 원내에 입성 시키면서 약점으로 지목된 당내 지지 세력도 크게 늘렸다는 평을 얻었다.

박 시장은 평생 동안 친일 청산에 많은 관심을 쏟았고, 독재에 저항했으며, 시민사회의 편에서 기득권과 싸웠다.
시장이 된 이후에는 일 중독이라 불릴 정도로 시정에 매달렸고, 공무원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꼼꼼하게 업무를 챙겼다.

9일 오전 10시 44분에 등산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던 박 시장은 결국 이날 자정께 사망한 채 발견되면서 일 평생을 한번도 쉬지 않았던 고단한 삶을 끝마쳤다.
그의 나이 향년 64세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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