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부동산 망치는 부동산 정치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13 17:36

수정 2020.07.13 17:36

집을 시장으로 안 보고
마치 술·담배처럼 취급
덕지덕지 죄악세 물려
[곽인찬 칼럼] 부동산 망치는 부동산 정치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을 두둔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바람에 집은 집대로 내놓고 스타일까지 구겼다. 다만 그 과정이 마음에 걸린다. 여론재판의 희생양이 됐다. 시장경제를 한다는 한국에서 졸지에 집 두 채에서 무주택자가 될 판이다. 서울 강남에 집 한 채 갖는 게 그렇게 욕먹을 일인가. 나는 노 실장을 두둔할 마음도 없지만 그렇다고 손가락질할 마음도 없다.


한국에서 집은 술이나 담배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술담배에 매기는 세금을 죄악세라 한다. 집도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종부세도 내고, 재산세도 내고, 취득세도 내고, 양도세도 내고, 증여세도 낸다. 이렇게 다채로운 세금을 물리는 자산이 또 있을까.

20세기 초 청교도 정신으로 충만한 미국에서 금주법이 나왔다. 수정헌법 18조가 먼저 나왔고, 그에 발맞춰 하원 법사위원장이던 앤드루 볼스테드 의원이 금주법 제정(1919년)을 주도했다. 그러자 웬걸, 제일 신난 건 갱단이었다. 시카고 암흑가를 주름잡던 알 카포네도 이때 전성기를 누렸다. 밀주는 리스크가 큰 만큼 이문도 컸다. 인간의 욕망을 법으로 억누르려던 볼스테드법은 결국 13년 만에 수정헌법 21조로 폐기 운명을 맞는다.

부동산 정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을 꼽으라면 단연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어록이다. 김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부동산 정책만큼은 '여기가 북한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더 확실하게 때려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부동산을 보는 시각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북한처럼 하려면 집을 싸그리 몰수해서 배급하듯 나눠주면 된다.

지난주 22번째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불러 질책성 지시를 내린 지 여드레 만이다. 종부세율을 최고 6%로 높이는 등 징벌적 세금을 물리는 게 골자다. 당정이 부동산 세금을 짓주무르는 동안 내 머리엔 자꾸 노자(老子)가 떠올랐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세상에 금기시하고 가리는 게 많을수록 백성은 더욱 가난해진다'고 했다. '내가 일을 꾸미지 않으므로 백성이 저절로 부유하게 된다'는 말도 했다.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2020년 한국 정부가 노자처럼 무위를 흥얼거리며 살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사사건건 끼어드는 게 과연 잘하는 걸까. 국토부 보도자료를 보라. 한마디로 난수표다.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한국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숱한 대출규제는 또 어떤가. 세금은 더 복잡하다. 보도자료 끝엔 늘상 일문일답이 붙어 있다. 그걸 읽는다고 알쏭달쏭이 풀리는 것도 아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추모사에서 문 대통령은 "안보도, 경제도, 국정 전반에서 유능함을 보여주자"고 말했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는 말도 했다. 문 대통령의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하지만 부동산만큼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문 대통령에게 부동산판 K방역 모델을 제안한다. K방역이 성공한 이유는 전문가 의견을 따랐기 때문이다. 부동산이라고 다를 게 없다. 정치색부터 빼라. 그래야 수요·공급 원리가 작동하는 부동산 시장이 보인다.
정책은 전문가 그룹에 맡기면 된다. 정치가 끼어들면 부동산 시장은 경기를 일으킨다.
머잖아 나올 23번째 대책이 제발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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