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검찰 불신과 법치의 위기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15 17:56

수정 2020.07.15 18:25

무소불위 검찰총장 위상추락
이념과 정파로 편 나눠 다툼
'반쪽 법치'가 지배하는 세상
[노주석 칼럼] 검찰 불신과 법치의 위기
지난 1999년 '옷로비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센 임명직 공직자가 누구인지를 만천하에 보여줬다. 이 사건은 외화 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강순덕 통일부 장관의 부인 배정숙씨를 동원, 김태정 검찰총장의 부인 연정희씨에게 고가의 호피코트를 선물한 것이 들통이 나면서 수면으로 떠올랐다.

사람들의 관심은 로비 과정에서 드러난 공직사회의 속살에 쏠렸다. 한 편의 블랙코미디였다. 그때만 해도 '민간인' 아내의 직급과 직책이 남편과 동일시되던 시절이었다. '슈퍼갑'은 검찰총장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검찰총장의 부인이 단독 주연이었고, 재벌그룹 회장과 통일부 장관 부인이 들러리였다. 나머지 장차관급의 부인은 거의 무수리 수준이었다.

죄 지은 자에겐 법이 무섭고, 돈 있는 자에겐 세금이 무섭다. 세금은 돈으로 막을 수 있다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양손에 쥔 검찰 총수는 무소불위의 존재였다. 임면권자인 대통령조차 집권 후반기에 닥칠 후환이 두려워서 믿을 만한 사람을 앉히려고 혈안이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 사건을 떠올린 이유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날개 없는 추락 때문이다. '천하의 검찰총장'이 겁박을 당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위에서 누르고, 코밑에서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치받는다. 검찰총장 찍어내기 모양새다. 인사권은 장관이 쥐고 있고, 수사검사 지휘권은 서열 '넘버2'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있다.

총장은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다. 부인 김건희씨가 연루된 '장모 고발사건'은 보고를 받지 않는 선에서 물러서야 했다. '검언유착 사건'에 휘말린 '왼팔' 한동훈 검사장 관련 수사를 서울중앙지검을 피해 독립적 수사본부에 넘기려던 시도는 실패했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그리고 서울중앙지검장이 편을 갈라 다투는 세상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장관은 검찰인사에서 검찰총장의 수족을 잘라냈다. 검찰총장과 중앙지검장은 서로를 수사지휘라인에서 배제하는 총질을 서슴지 않았다. 법무부와 대검 간부들은 '장관파'와 '총장파'로 나눠 힘을 겨뤘다. 결국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박탈로 검찰총장은 '식물인간'이 됐다.

검찰총장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다. 검찰의 신뢰 추락으로 말미암은 법치의 위기가 염려될 뿐이다. 정권 수호와 헤게모니 수호의 드잡이질에 휘말린 양쪽의 주장만으로는 진위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서로 '반쪽의 진실'을 되뇌기 때문이다. 한쪽은 입으론 검찰개혁을 부르짖지만, 검찰 장악의 속셈을 감추고 있다. 또 다른 한쪽도 검찰독립이라고 외치지만, 밥그릇을 지킬 뿐이다.

검찰이 정권의 '개'가 되어 상대편을 물어뜯는 것을 원치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치검찰의 정권 흔들기도 마뜩지 않다. 법을 집행하는 준사법기관이 정파와 이념으로 무장한 채 각개약진하는 게 문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이어 한동훈 검사장마저 검찰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했다.
검사가 검찰을 거부하고, 외부 전문가에게 신변처리를 맡긴 꼴이다. 안팎 없이 검찰 불신이다.
'온전한 법치'는 어디로 갔나. '반쪽의 법치'가 판치는 세상에서 살기가 불편하고 불안하다.

joo@fnnews.com 정치 경제 사회 담당 노주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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