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22타수 무안타, 부동산대책의 상흔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20 17:56

수정 2020.07.20 17:56

수요 조이는 징벌적 규제로
실수요자들 '이생집망' 한탄
균형개발로 '강남불패' 깨야
[구본영 칼럼] 22타수 무안타, 부동산대책의 상흔
'22타수 무안타' 프로야구 기록이 아니다. 지난 10일 국토교통부가 22번째 부동산대책을 내놓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댓글이다. 발표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증여세 중과 등 23번째 대책이 거론되니 나온 조롱 섞인 반응이었다.

시장의 현실에 눈감고 규제일변도 대책을 쏟아낸 대가다. 어떤 구질인지도 모르고 마구 배트를 휘둘렀다는 얘기다. 주택담보대출 축소, 공시지가 상향 등 수요 억제에만 초점을 맞춘 대책들이 그랬다.
다주택자들의 처분을 이끌지는 못하고 집값 상승의 풍선효과나 매물 잠김, 전세대란 등 부작용만 두드러지면서다. 취득세·보유세·거래세 등 세금폭탄 '3종 세트'로 구성된 7·10 대책도 마찬가지다. 집을 사지도, 갖지도, 팔지도 못하게 하니 증여라는 '묘수'가 등장했을 법하다. 입법부 수장조차 서울 강남의 '똘똘한 한 채'는 남기고 대전 아파트를 아들에게 증여하는 판이니….

집값을 잡겠다는 문재인정부의 목표 자체는 백번 옳다. 불공정한 불로소득을 줄이겠다는 선의를 누가 부인하겠나.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길도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경구도 있다. 두더지 잡기 게임하듯 '세금 방망이'를 22번 두들긴 결과가 뭔가.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긴 망했다)이라는 한탄이 괜히 나오겠나. 현금부자는 웃고, 내집 마련 꿈을 앗긴 실수요자들의 한숨만 깊어졌다면 이보다 허망한 일도 없다.

어느 정권인들 집값을 잡고 싶지 않겠나. 삼진 당하고 싶은 타자가 어디 있겠나. 의욕만 앞서 선구안 없이 방망이를 돌리는 게 문제일 뿐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부터 아마추어 같은 '22번 헛스윙'을 되돌아봐야 한다. 전 정부 때에 비해 다락처럼 오른 집값에 세금폭탄까지 맞은 실수요자들이 주말 서울 도심에서 신발을 벗어던지며 분노를 표출할 지경이라면 말이다.

살 집을 교육·교통 여건이 좋은데다 이왕이면 자산 기대가치가 높은 데를 찾는 건 인지상정이다. 이 같은 시장원리에 따른 선택을 무조건 죄악시하는 게 해법이 될 순 없다. 징벌적 과세로 다주택자를 때려잡으려다 무주택 서민만 울리는 역설을 빚은 게 저간의 사정이 아닌가. 서울 강북의 자사고·특목고를 없애 강남3구 집값 상승을 더 부추겨 외려 양극화만 심화된 현실도 뼈아프다.

최근 조영태 교수(서울대)의 스테디셀러 '정해진 미래'를 읽었다. 그는 책에서 한국의 특징적 인구현상으로 '저출산+고령화'에다 '도시(특히 서울) 집중'을 보탰다. 지방 곳곳에선 빈집이 넘치는데 수도권 집값은 펄펄 끓는 작금의 현상이 이해됐다.

그렇다면 정책당국이 이제라도 스마트한 부동산정책을 내놔야 한다. 수요를 줄이려는 대증요법만 남발하지 말고 공급도 꾸준히 늘리겠다는 신호를 주란 말만이 아니다. 중장기적으로 수도권과 지방, 서울 강남과 강북 간 부동산 자산가치의 균형을 유도하는 입체적 정책 밑그림을 그리란 뜻이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강남 신규 택지 조성 등 단기대책만으론 부족하다.
교육·교통 등 강북의 생활인프라를 늘리는 중기대책으로 '강남불패 신화'를 깨나가야 한다. '무늬만의 지역균형'도 지양해야 한다.
수백개 공공기관을 전국 방방곡곡의 혁신도시에 흩어놨지만, 정작 종사자들이 수도권에 집을 둔다면 무슨 소용인가. 서울이란 골리앗과 맞설 수 있는 지역별 거점도시를 육성하는 장기대안도 절실하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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