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최진숙 칼럼] 아직도 재택근무를 안하세요?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22 17:46

수정 2020.07.22 17:46

구텐베르크후 최대 변곡점
코로나 바이러스가 방아쇠
비대면 고립감 극복이 관건
[최진숙 칼럼] 아직도 재택근무를 안하세요?
"독일 대장장이 출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 이후 이토록 큰 변곡점은 없었다." 미국 저명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의 지적이다.

그가 말하는 변곡점은 정확히 2007년에서 시작한다. 특별할 것 같지 않아 보였던 그해 1월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청바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 세상을 뒤흔들었다. 페이스북이 e메일 주소를 가진 13세 이상 모두에게 사이트를 개방, 미국 로컬의 벽을 넘은 것도 그 무렵이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출범시켰다.
뉴욕 요크타운 하이츠에 있는 IBM 왓슨연구소가 왓슨이라는 이름의 인지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그때다. 요즘 핫해진 화상전문회의업체 줌의 등장은 조금 뒤인 2011년이다.

프리드먼의 표현을 빌리면 이 대기계들이 가속시대를 열었다. 기기의 발전 속도는 아찔하다. "기하급수적 성장의 폭발력으로 21세기 기술의 속도는 2만년의 진보와 맞먹는다(레이 키즈와일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 똑똑한 기계들이 지금의 끈질긴 전염병 팬데믹으로부터 인간을 방어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천만다행인가. 기기와 네트워크의 위력을 돌아보게 하는 시절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 광풍을 피해 안전하게 집에서 일하라. 그럴 수 있는 물적 토대는 이미 코로나19 발발 이전부터 충분했으니까. 회사 밖 노동을 의미하는 원격(tele) 또는 재택근무가 전 세계적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 국내 500대 기업 75%(한국경제연구원 조사)도 여기에 속한다. 사무실이 줄어든 탓에 연말 뉴욕 맨해튼 오피스빌딩 공실률이 25%로 뛸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원격근무는 최근 수년 새 계속 확대돼 왔는데 바이러스는 주춤하던 기업들을 이 대열로 끌어당기는 트리거 역할을 했다. 일하는 이들에게 유익했느냐, 기업은 생산성을 더 높였느냐. 재택근무의 지속가능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지표일 것이다. 부정적 시각도 있었다. 즉흥 대화가 안 되는 원격근무는 미친 짓이라고 말한 이가 스티브 잡스다. 하지만 지금 반응을 보면 창의력이 자산인 IT업종에서 긍정의 신호가 더 확연하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은 대찬성 기류다. 국내에서도 네이버·카카오 등이 몰려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와 통신업체에서 강한 변화의 욕구가 읽힌다.

재택근무는 지금의 경직된 근로시스템은 물론 도시기능과 구조개편에도 일대 충격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 자율출퇴근·유연 근무는 회사, 근로자 모두에게 경쟁력이 있다. 능력만 있으면 세계 어느 곳에 있는 기업에도 응시할 수 있으니 원격 유목민 시대도 머잖았다. 국가별 인재유치 경쟁은 벌써 시작됐다. 유럽 여러 국가들은 지역 내 재택근무할 고임금 외국인을 대상으로 싼 임대료, 세금감면 등을 공식화하고 있다. 고급인력 커뮤니티의 미래를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재택근무 가능 인력을 맨 꼭대기에 둔 새로운 노동자 계급 피라미드는 사회갈등의 또 다른 한 축이 될 수 있다. 최종적으로는 직원 간 협업, 상호신뢰, 공정한 평가 같은 재택근무 아킬레스건 관리에 기업별 승패가 갈릴 것이다. 재택근무를 가능케 한 혁신적 기기들은 더 빨리 진화할 것이다. 문제는 다시 고립감이다. 프리드먼은 저서 '늦어서 고마워(Thank you for being late)'에서 "가속의 시대, 물러서진 말고 잠시 멈춰 생각을 즐기라"고 조언한다. 집 밖 대안공간을 만드는 건 사회의 몫이다.
원격근무 최선두 네덜란드를 뒷받침하고 있는 게 공공도서관이다. 일종의 안락한 거점 오피스다.
우리도 역사상 최대 노동실험을 적극 준비할 때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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