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르포] 노회찬 2주기 새벽 첫차 6411번…"코로나보다 생계가 더 무섭죠"

뉴스1

입력 2020.07.23 13:26

수정 2020.07.23 14:40

23일 오전 4시 기점에서 출발한 6411번 버스에 일터로 향하는 저임금 근로자들로 가득차 있다. 2020.07.23/뉴스1 © 뉴스1 이밝음 기자
23일 오전 4시 기점에서 출발한 6411번 버스에 일터로 향하는 저임금 근로자들로 가득차 있다. 2020.07.23/뉴스1 © 뉴스1 이밝음 기자


23일 오전 4시 기점에서 출발하는 6411번 버스에 승객이 탑승하고 있다. 2020.07.23/뉴스1 © 뉴스1 이밝음 기자
23일 오전 4시 기점에서 출발하는 6411번 버스에 승객이 탑승하고 있다. 2020.07.23/뉴스1 © 뉴스1 이밝음 기자


2018년 7월2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고(故)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추도식이 열렸다. 많은 추도객들이 추도식장 밖에서 영상을 통해 추도식을 함께 하고 있다.2018.7.26/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2018년 7월2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고(故)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추도식이 열렸다. 많은 추도객들이 추도식장 밖에서 영상을 통해 추도식을 함께 하고 있다.2018.7.26/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온다예 기자,이밝음 기자 =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은 2012년 진보정의당(현 정의당) 출범 당시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6411번 버스를 언급했다.

그는 매일 새벽 6411번 버스를 타고 서울 강남 일대로 출근하는 저임금 노동자 '투명인간'들의 삶을 대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연설은 지금까지도 명연설로 회자되고 있다. 6411버스는 노 전 의원 정치의 상징이 됐다.



2018년 7월23일 노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나고 그 후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20년 7월23일 새벽에도 6411번 버스에는 어김없이 고된 노동의 현장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오전 4시 서울 구로구 구로동 거리공원 정거장에서 출발한 6411번 첫차는 승객 두 명과 기자를 태우고 비 오는 새벽 거리를 달렸다.

힘겨운 걸음으로 첫차에 올라탄 이모씨(79)는 강남구 역삼동에서 빌딩미화원으로 일한 지 어느덧 10년이 됐다.

이씨는 "이 차 타고 새벽에 나가는 사람들은 다 미화원들"이라며 "새벽 2시에 일어나고 저녁 9~10시에 자는 것이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정거장에서 승객 5명이 한 번에 버스에 올랐다.

강남의 한 빌딩에서 미화원으로 근무하는 류모씨(74)는 "이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며 "6411번 버스를 매일 타서 이제 운전기사들 얼굴도 다 기억할 정도"라고 말했다.

류씨는 당장 몸은 힘들지만 생계를 위해 일을 쉽사리 그만둘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업무강도가 세지만 나이 많은 사람은 조건을 따져가며 일할 형편이 못 된다. 써주면 써주는 대로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6411번 버스가 구로역 인근을 지나자 버스 안은 빈자리 없이 가득찼다. 대부분이 강남 일대에서 빌딩 미화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출근길에서 매일 같이 마주치는 사람들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서로의 가방을 들어주기도 했다.

고된 출근길에도 지인을 만나 잠시나마 밝게 웃던 사람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업무가 더 힘들어졌다며 한숨을 푹 쉬었다.

류씨는 "마스크를 쓰고 일하니까 너무 덥고 가끔 속이 안 좋을 때도 있다"며 "세제를 사용해서 수시로 청소를 해야 해 힘이 더 들어간다"고 말했다.

70대인 김모씨 역시 "코로나19가 터진 뒤로 문 손잡이 하나라도 더 닦아야 한다"며 "일이 힘들어졌다"고 밝혔다.

조금씩 줄어드는 일자리도 큰 걱정거리다.

삼성동 한 빌딩에서 미화원으로 일하는 박모씨(60대)는 "예전에는 흑석동 쪽으로 가면 문이 안 닫힐 정도로 사람이 가득 찼다. 무게 때문에 버스가 기울어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힘없이 말했다.

박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에 들어갈까봐 무섭다. 그러면 우리 일자리도 줄어들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운전기사 정모씨(50)는 "코로나가 터져도 첫차 손님은 죽으나 사나 목숨을 걸고 일을 하러 나온다"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버스가 노들역 인근으로 들어서자 만차였던 버스에서 사람들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오전 5시가 다 돼가자 일부 승객은 기사에게 '빨리 좀 가달라'며 재촉하기도 했다. 남들보다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1분1초는 황금같은 시간이다.

김모씨(60대)는 "사람들이 많이 오면 청소를 시작할 수 없어서 원래 근무시간보다 1시간 빠른 5시반까지 간다"며 "그래서 출근하면서 해 뜨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늘 해 뜨기 전에 버스 타서 해 뜨기 전에 내렸다"고 들려주었다.

한 승객은 "10년 전부터 버스 첫차 출발 시간을 5분이라도 앞당겨달라고 건의했는데 변화가 없다"며 "증차를 했다고 해도 출근길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날 버스에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함께 탔다. 류 의원은 오전 4시 구로동 거리공원 정류장부터 버스가 회차할 때까지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수많은 시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류 의원은 "국회에선 이스타항공 임금체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과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이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5분만 버스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마스크가 답답하다'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며 "이분들이 바라는 건 큰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버스는 고속터미널을 지나 반환점을 거쳐 다시 구로동으로 향했다. 종점으로 향하는 버스에는 2~3명의 승객이 타고 내릴 뿐 거의 텅 비다시피 했다.
버스는 오전 7시 다시 구로동 거리공원 정류장에 도착했고 버스에 남은 이는 기자와 버스 운전기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