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테헤란로

[여의도에서] ‘성계고기’가 되지 않으려면

김학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23 17:31

수정 2020.07.23 17:31

[여의도에서] ‘성계고기’가 되지 않으려면
또 나왔다. 16년만에 다시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론이다.

요즘 유행어로 '집권여당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청와대나 국회의 세종시 이전이 악화된 부동산 민심의 돌파구라고 믿은 것인지, 16년만에 다시 꺼내든 집권여당의 구상이 갑작스럽고 놀랍기도 하다.

행정수도가 완성되면 서울 집값이 떨어질까.

반신반의다. 오히려 청와대와 국회가 세종시로 이전되면 그 자리를 놓고 종로와 여의도 땅값이 더 들썩거리지는 않을까.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정치의 중심이 내려간다고 기업도 함께 따라갈까. 정치적으로 꺼낸 단기 정치쇼에 불과한건 아닐까.

무엇보다 지난 얘기를 꺼내들며 또 다시 '노무현 찬스'를 쓰려는 집권여당의 전략에 꼼수라는 비난도 이어지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카드로 꺼낸 행정수도 이전은 국토균형 발전이란 국가적 과제 실현 차원이었다. 야당도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이 같을까를 두고는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여당이 어차피 안될 것을 알고 여론호도용으로 세종시를 꺼내들었다는 의심만 커지고 있다. 집권여당 원내수장이 분원 논의마저 흩뜨리는 이슈를 던진 저의는 부동산 여론 환기로밖에 읽힐 뿐이다.

시간을 되돌려 보자. 앞서 이명박 정부에선 대기업과 대학 유치 등의 대안을 담은 수정안 논의로 국론이 반쪽으로 갈라졌다.

세종시 수정안 논란이 뜨거웠던 10년 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운찬 당시 총리는 "행정도시특별법에 규정된 표면상의 목표는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이지만 실제 그 원안으로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기업, 대학 등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애매한 위치에 놓인 세종시를 보면, 결국 정 전 총리의 말이 맞은 셈이다.

당시 야당이던 현 집권여당은 친박근혜계와 뭉쳐 작정하고 무산시켜 버렸다. 세종시의 제 기능이 작동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정무적 판단 아래 수정안을 뭉개버린 그들은 다시 청와대 국회 이전을 꺼내들었다.

아무리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르는 정치인들이라지만, 국민들의 주거와 직결된 문제를 어찌 이렇게 가벼이 꺼내드는지 한숨이 나온다.

600년간 지속된 '서울은 중앙이고 지방은 변방'이란 서울 제일주의와 지역 서열의식. '사람은 나서 서울로 가야 되고 말은 나서 제주도로 보내야 된다'는 인식이 문제다. 서울에 버금가는 자생력을 만들어내는 국토 균형발전이 필요한 때다.

그러나 세종시가 또 다른 지방간 불균형을 야기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행정수도 완성론이 나온 뒤 벌써 세종시 집 값이 크게 출렁이고 있어서다.


무리한 행정수도 이전은 600년 전 '성계고기' 현상을 재현시킬 수 있다. 한양 천도를 결정한 태조 이성계에 대한 분노로 개성사람들이 뜯었던 돼지고기는 21세기엔 '태년고기' '재인고기'로 언제든 불릴 수 있다.


600년 전엔 개성사람들만 성계고기를 씹었지만, 이번엔 전국의 국민들이 씹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때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정치부 차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