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G2 싸움에 등터진 韓기업, 노골적 압박에 진퇴양난 [미중 갈등 불똥 튄 한국]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23 17:58

수정 2020.07.23 19:07

美, LGU+에 화웨이 거래 중단 요구
"4G 장비 교체 사실상 불가능" 곤혹
일각 "외교당국 차원 지원있어야"
中매출 높은 반도체·車등 타격 우려
미·중 간 정치·경제적 갈등이 격화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자칫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 간 갈등의 유탄을 직접 맞고 있는 국내 통신업체 LG유플러스는 진퇴양난의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국 국무부 사이버·국제통신정보정책 담당 부차관보가 지난 21일(현지시간) 공식 화상브리핑을 통해 "우리는 LG유플러스 같은 기업들에 믿을 수 없는 공급업체에서 믿을 수 있는 업체로 옮기라고 촉구한다"며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장 5세대(5G) 이동통신 설비 확충을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LG유플러스로서는 정치·외교적으로 시작된 논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못한 채 속앓이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교당국이 한국 기업 보호를 위해 적극적인 소명을 하는 등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당장 화웨이 거래중단 어려울 듯


23일 IT업계에 따르면 현재 5G 기술력과 장비로는 5G 서비스를 단독으로 구현할 수 없어 4세대(4G) 장비와 연동해 설치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 화웨이 장비로 4G를 구축한 LG유플러스가 미국의 요구대로 화웨이와 당장 거래를 중단하려면 4G부터 새로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수백만 가입자가 사용하고 있는 수도권 4G 장비를 걷어내고 새로 투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통신기술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실 미국이 LG유플러스의 화웨이 장비 사용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1년 4G 투자를 시작할 때도 화웨이 장비의 보안 문제를 제기했었다. 당시 LG유플러스는 미국 당국과 수차례 협의를 거쳐 서울 용산구를 비롯해 수도권의 미군기지 주변에는 화웨이 장비를 설치하지 않았다. 이후 미국 당국에서도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게 당시 통신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곤혹스러운 LG유플러스


스트레이어 부차관보의 발언 뒤 LG유플러스는 "지난 1월 ISO27001 정보보호 관리체계 국제 인증에 이어 5월 화웨이가 CC 인증을 획득함으로써 정보보호 측면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회사로 인정받았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보안 걱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에둘러 화웨이와 거래를 끊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에 통신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의 거대한 고래들 사이에 끼인 한국 기업이 직접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외교당국이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물밑의 지원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중국 비중 높은 기업들 전전긍긍


이번 화웨이 사태가 반도체 등 다른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화웨이의 장비 생산량이 줄어들면 한국산 반도체의 소비량도 줄고, 국내 업체들이 거래선을 바꾸는 과정에서 공급단가 등이 올라가면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문병기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국내 업체들이 화웨이 장비를 못쓰게 되면 조정 비용이 발생하고 부품 생산단가가 올라가는 악영향이 있다"면서 "영업이익 등 마진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미·중 양국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정치적 우방인 미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중국 사이에 끼인 한국 기업들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업종별로는 중국 매출비중이 높은 반도체, 자동차, 화학 등의 타격이 예상된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중국 매출비중은 25% 수준이고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46.4%로 삼성전자보다 더 높다. 사드 사태 때 중국의 규제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던 유통, 관광산업 등도 긴장하고 있다.


문 연구원은 "미·중 갈등이 더 심화된다면 화웨이뿐 아니라 다른 기업까지 제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들이 미·중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까지 예상하고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안승현 홍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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