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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벗긴 줄기세포, 머리카락 자라게 한다? [김성호의 Yo! Run! Check!]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25 10:00

수정 2020.07.25 10:00

[김성호의 Yo! Run! Check! 6] 이상엽·티스템 공동연구팀 '무막줄기세포 모발재생 연구'
[파이낸셜뉴스] 줄기세포가 탈모치료에도 쓰이게 될까.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가 SCI급 학술지에 발표돼 주목받고 있다. 풍부한 영양분과 어느 부위에도 적용이 가능해 ‘만능 세포’로 불리는 줄기세포가 전 세계 탈모인에게 한 줄기 희망을 비출지 관심을 모은다.

기존 탈모치료는 근본적 개선보단 억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프로페시아, 미녹시딜이다. 다국적 제약사가 내놓은 이들 제품은 효과가 확실해 전 세계 탈모인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들 제품이 기록하는 매출은 한국에서만 매년 수백억에 이를 정도다.


지난 5월 SCI급 잡지인 줄기세포중개의학지에 발표된 무막줄기세포 탈모치료 연구. 이상엽 양산부산대병원 연구팀과 티스템이 공동으로 수행했다. 사진=김성호 기자
지난 5월 SCI급 잡지인 줄기세포중개의학지에 발표된 무막줄기세포 탈모치료 연구. 이상엽 양산부산대병원 연구팀과 티스템이 공동으로 수행했다. 사진=김성호 기자

■늘어가는 탈모인구, 해법은 아직

이들 제품도 완벽하지는 않다. 우선 3개월가량 복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고, 복용을 멈추면 다시 탈모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다른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천연두, 홍역, 파상풍은 물론 암과 에이즈 같은 질병까지 정복해나가고 있는 인류가 탈모라는 문제 앞에선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탈모인구는 1000만명 가량으로 추정된다. 여기엔 완전히 탈모가 진행돼 머리카락이 나지 않은 사람부터 정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머리카락이 빠지는 상태가 모두 포함된다. 이중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 사람은 23만명 내외로, 약 2.3% 정도다. 탈모로 병원 처방까지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비용도 부담스럽다는 게 병원을 찾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증세가 나타나면 머리카락 상실은 물론, 자신감 저하와 우울증까지 동반돼 일찍부터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다.

탈모인구는 갈수록 젊어지고 또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2019년 기준 병원을 찾아 탈모치료를 받은 환자 중 40세 미만은 50.8%로 절반을 넘어섰다. 2015년엔 21만명에 못 미쳤던 탈모환자 수도 지난해엔 23만4000명으로 소폭 증가했다.

이상엽 양산부산대병원 연구팀의 연구 관련 사진. 실험 4주후와 12주후를 비교한 결과 모발 수가 실험군에서 16주째 26%, 모발 두께는 14%가 증가해 효과가 확인됐다. 양산부산대병원 제공.
이상엽 양산부산대병원 연구팀의 연구 관련 사진. 실험 4주후와 12주후를 비교한 결과 모발 수가 실험군에서 16주째 26%, 모발 두께는 14%가 증가해 효과가 확인됐다. 양산부산대병원 제공.

■막 벗긴 줄기세포··· 탈모치료에 혁신 가져올까

이에 많은 업체들은 탈모문제 해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호르몬 작용을 억제하는 프로페시아와 아보다트에 더해 모근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판시딜, 모근 혈관을 확장하는 미녹시딜 등의 보조제 제품군도 인기다. 모발을 강화한다는 샴푸, 머리에 뿌리는 두피에센스 등도 잘 팔려나간다.

최근엔 국내 연구진에 의해 줄기세포에서 세포막을 제거한 무막 줄기세포 추출물(ADSC-CE)을 활용한 탈모 치료 연구가 발표돼 관심을 모았다.

연구는 티스템(김영실 대표)이 개발한 줄기세포 제재를 활용해 이상엽 양산부산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진행했다. 올해 4월 줄기세포 분야 국제 학술지인 줄기세포중개의학(SCTM)지에 지난 5월 게재됐다.

연구팀은 남성형 탈모를 겪는 남성 29명과 여성 9명 등 총 38명을 각 19명씩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나눠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군엔 ADSC-CE 추출물을 줘 하루 두 번 두피에 바르게 했고, 대조군에는 가짜약을 줬다. 이중 4명이 실험 도중 낙오해 34명에 대한 연구가 발표됐다.

실험결과는 놀랄만했다. 실험군에선 모발 수가 8주째 16%, 16주째 26% 증가했다. 대조군에선 8주째 3.2% 감소했고, 16주째엔 7.1% 증가했다. 모발 두께도 실험군에선 16주째 14% 증가했고 대조군에선 5.5% 늘어났다. 실험대상자들이 탈모가 진행 중인 이들로 일상에서 다른 수단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분명한 차이가 나타났다.

무막 줄기세포는 3세대 줄기세포 기술로 분류된다. 지방조직 등에서 직접 분리한 성체 줄기세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게 1세대, 이를 배양해 증식시켜 사용하는 게 2세대 기술이다. 문제는 1, 2세대가 환자 본인에게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줄기세포를 감싼 세포막에 고유한 면역체계가 있어 타인에게 직접 주면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실 티스템 대표. 티스템 제공.
김영실 티스템 대표. 티스템 제공.

■기능성화장품 단계서 판매··· 과제도 산적

무막 줄기세포 기술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 가치가 높다. 초음파를 통해 세포막을 제거하고 미세필터를 통해 면역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막 성분을 걸러내는 방식이다. 이렇게 뽑아낸 세포액이 모발까지 재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입증돼 탈모치료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게 됐다.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치료제와 달리 이렇다 할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치료제로 상용화되기엔 단계가 많이 남아있지만 탈모에 효과가 있는 보조제로 쓰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막 제거 특허를 가진 티스템은 두피클렌저, 두피에센스 등의 상품을 제조해 자사 홈페이지와 약국 등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미국FDA 허가를 거쳐 정식 탈모의약품 허가를 받고자 준비 중이다.

다만 해결해야할 과제도 여럿이다. 해당 연구가 소규모 임상시험으로 진행돼 더 큰 규모의 추가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이 그렇다. 사실상 약의 효능이 기대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약’이 아닌 기능성 화장품 허가만 받은 상태라는 점에서 업체 차원에서 보다 철저한 안전성 관리가 담보될 필요가 있다. 줄기세포 문제에서 반드시 지적되는 원료 세포의 안전성에 대한 검증 등이 대표적이다.

연구를 진행한 이상엽 교수는 “이 연구는 시판되는 제품의 효능을 입증한 것”이라며 “대체치료제로 약은 아니지만 별다른 부작용 없이 줄기세포추출물의 모발 재생 효능이 검증되었다는 점에서 장점이 크다”고 자평했다.

앤서니 아탈라 SCTM 편집장의 평은 이 연구의 가치와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아탈라는 “남성형 탈모로 고통 받는 수백만 명에게 이 작은 임상시험 결과는 희망을 안겨줬다”며 “이번 연구를 뒷받침할 추가적인 연구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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