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서울 집값 잡겠다는 천도론이 천박하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03 17:45

수정 2020.08.03 22:02

국면전환용 수도이전 곤란
국토균형개발 성공하려면
국가백년대계로 접근해야
[구본영 칼럼] 서울 집값 잡겠다는 천도론이 천박하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서울을 '천박한 도시'에 빗대 파문을 일으켰다. 한강변에 늘어선 아파트 단지를 가리키면서다. 프랑스 파리에 비해 품위가 떨어진다는 뉘앙스였다. 그러나 몽마르트르 언덕과 남산 오솔길을 모두 걸어본 이라면 누가 이런 평가에 동의하겠나. 서울로 인구집중의 심각성은 인정하더라도….

여권이 불쑥 수도이전론을 끄집어냈다. 김태년 원내대표가 "국회와 청와대, 정부 부처 모두 세종시로 이전해야 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다. 물론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50%와 경제의 70%가 집중된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김부겸 전 의원)라는 말은 맞다.
그래서 지역 간 불균형 해소를 위해 행정수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정 부분 설득력은 있다.

하지만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나. 서울에 터 잡으려는 국민의 욕구는 그 만큼 뿌리 깊다는 뜻이다. 조선 정조 때 대실학자 정약용도 귀양살이 중 아들들에게 서찰을 통해 서울살이를 권면했다. 즉 "가세가 쇠락해 도성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근교에서 과수를 심고 채소를 가꾸어 생계를 유지하다가, 재산이 넉넉해지면 꼭 도심으로 들어가라"고 채근했다.

하긴 파리가 과밀한 게 어디 센 강변이 아름다워서일까. 일자리나 정보의 집적지에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다. 그러니 천도론에 군불을 때고 있는 이 대표조차 세종시 집 말고도 '천박한 도시'에 가족 명의 아파트는 그대로 갖고 있을 법하다. 현 정부 집권 3년 만에 서울 아파트 값이 52% 폭등(경실련 집계)한 배경에 깔린 '불편한 진실'이다.

문재인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이란 깃발을 다시 들었다. 이를 수도이전 완성과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투트랙으로 관철할 참이다. 그러나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취지라면 번짓수를 잘못 짚은 꼴이다. 세종시 아파트 값만 한 달 새 6% 이상 급등하고 있어서다. 공공기관도 1차 때처럼 전국 곳곳에 흩어놓는 식이면 곤란하다. 당시 풀린 토지보상금이 지역을 살찌우기보다 수도권 주택 투기수요를 부추겼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청와대까지 옮겨 천도가 완성된다면 '국토균형'이 이뤄질까. 이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은 적잖다. 서울과 출퇴근 기준으로 반나절 생활권인 세종시라 수도권을 광역화할 소지만 크다는 얘기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가 수도권 인구분산은커녕 대전·충청권 인구만 빨아들였다는 그간의 평가의 연장선상이다.

완전한 수도이전, 즉 천도는 노무현정부 당시 2004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노 전 대통령은 16대 대선 후 "(충청권 표를 얻는 데) 재미를 좀 봤다"고 했었다. 천도를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득표에 도움이 됐다는 함의이다. 혹여 여당으로선 천도론을 차기 대선까지 써먹을 꽃놀이패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며칠 전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라. 세종시로 국회이전은 찬성이 더 많았지만, 수도이전과 관련해서는 '서울 유지'라는 응답이 더 많았다.
국민은 여권이 들썩이는 집값으로 민심이 들끓자 언제 될지 모를 천도론을 들고 나왔음을 간파했다는 방증이다. 수도이전과 국토균형개발은 마땅히 국가백년대계로 접근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는 사안이다.
이를 국면전환용 '부동산 정치'의 일환으로 거론한다면 서울과 지방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격만 천박하게 만드는 꼴일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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