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뉴스]"국회 출장 다녀오면 하루가 다 갑니다. 어쩔 수 없이 야근할 수 밖에 없네요"(보건복지부 A과장)
코로나19로 언텍트 회의가 확산하고 있지만 21대 국회 개원 이후 세종시 공무원들이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여전하다. 국정감사를 위한 의원들의 자료요청과 잇단 직접 보고까지 겹쳐 행정비용 낭비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출장을 자제하라"고 말했지만 보좌진의 '설명 요구'에 쉽사리 거절할 수 없는 모양새다. 여권에서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국회 이전 방안이 세종시 공무원내에서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최근 3년 사이 출장횟수만 86만건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홍 부총리는 지난 10일 기재부 확대간부회의에서 "많은 간부가 세종 중심 근무를 위해 노력 중이지만 서울에서 개최되는 각종 회의 등으로 인해 다소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하반기 세종 근무가 정착될 수 있도록 세종회의 개최, 영상보고 활용 등 간부들이 솔선수범하고, 직원들도 불필요한 서울 출장은 자제해달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의 잦은 출장이 행정손실로 이어진다는 취지다.
세종 공무원들이 서울로 올라가며 생기는 비용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지난해 국회 사무처가 내놓은 국토연구원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국회와 세종시 소재 행정부처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출장비용(여비 및 교통운임)과 시간비용(초과근무수당)이 연 128억5274만원 규모에 달했다. 이 중 국회에서 쓰는 출장비는 8714만원 수준이고 나머지 127억6559만원은 모두 세종에서 근무하는 행정부처가 부담했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세종시에 위치한 중앙부처 공무원의 출장횟수는 86만9000건에 이른다.
경제 수장이 출장 자제를 요청했지만 실무진들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기재부에 근무하는 한 과장은 "국회가 개원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자료 요청 및 설명 요구가 많다"라며 "이를 거절할 명분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기재위 소속 여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국회 개원 이후 무리한 자료 요구와 함께 총괄 과장을 매번 국회로 호출한다고 전해졌다. 단순 요구 뿐만 아니라 관계 유지를 위해 서울행 KTX를 타는 공무원들도 많다. 해양수산부 소속 한 과장은 "아무리 언택트 시대라고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풀릴 일이 있다"며 "인간적인 관계를 가지고 나서 일 처리의 효율성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비효율 개선해야"
행정 비효율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자 국회 이전과 같은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첫번째 도화선은 민주당에서 시작됐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와 청와대, 서울에 남아 있는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을 주장했다.
세종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지난해 3월 세종시가 여론조사 기관인 윈지코리아컨설팅에 의뢰해 정부세종청사 21개 정부 부처 공무원 1066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85.8%가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보좌진들의 과도한 자료요구에 대해 경계하면서도 행정부 차원에서 효율성 도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원희 한경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자료 요구 그자체에 대해서는 문제 삼을 수 없지만 일부 문제되는 행동은 자중해야 한다"면서 "행정부에서 쟁점별로 설명회를 갖는 방식으로 업무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홍 부총리가 서울 출장을 자중하라는 배경은 부처 내부의 업무단절성이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박형준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당장 행정 비효율을 막기 위해서는 화상회의 같은 주어진 도구를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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