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테헤란로

[여의도에서] "내가 왜 투기꾼입니까?"

김현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13 17:16

수정 2020.08.13 17:28

[여의도에서] "내가 왜 투기꾼입니까?"
서울 송파구 잠실에 거주하는 한 50대 여성은 은퇴한 남편과 거주하는 집 이외에 경기 동탄2 신도시에 세를 놓는 집 하나를 더 보유하고 있다. 7년 전 미분양으로 남았던 물량을 은행대출을 끼고 사놓은 집인데 이제는 시세가 제법 올랐다. 대학생 자녀가 아직은 같이 살고 있지만, 언젠가 분가할 터라 세를 놓은 집을 가격이 올랐다고 선뜻 팔기는 어렵다. 남들은 "집값이 두 배가 올라 좋겠다"며 부러워해도 그 수억원의 돈은 그냥 마음속으로만 세어볼 뿐이다.

이 50대 여성은 부동산 투기는 본인과는 먼 이야기로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요즘은 심사가 뒤틀리곤 한다.
부동산대책이 쏟아지는 최근의 분위기에서 그는 단지 강남의 고가주택을 보유하고도 갭투자로 집을 사서 시세차익을 노린 다주택자이기 때문이다.

요즘 부동산 취재를 다니며 가장 많이 듣는 원성은 "내가 왜 투기꾼이냐"는 말이다.

그들의 항변을 곧이곧대로 받을 수는 없다. 어찌됐건 그들 모두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부동산에 돈을 넣고 이익을 챙기고, 또 그런 방식으로 일부는 알면서 모른 척 편법을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를 싸잡아 '투기를 조장하고 시장을 왜곡하는 세력'이라는 한바구니에 몰아넣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번 정부는 무려 24번의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어떤 것은 종합대책이고, 또 다수는 직전의 대책을 보완하거나 강화하는 내용이다. 경중을 들어 "대책은 4번뿐"이라고 주장하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주장은 진위 여부를 떠나 공허하게 들린다.

그 많은 대책에서 분양가상한제, 대출한도 축소, 전매제한 확대, 종부세·양도세·취득세 강화, 재건축 입주 기준 상향, 임대사업자 세폭탄 등 정말 촘촘한 '규제 그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집값은 상승세가 다소 위축됐을 뿐 여전히 오르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0.02%를 기록했다.

물론 부동산대책의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소위 '부동산 버스투어'로 치고 빠지는 투기세력이 사라졌고, 세입자의 거주권도 튼튼해졌다. 생애최초·신혼부부를 위한 청년층 주거복지도 강화됐다.

하지만 몇몇의 장점을 덮고도 남을 부작용들이 동시에 생겨났다. 그중에 가장 심각해 보이는 것이 바로 '내가 왜 투기꾼'이냐는 항변이다. '한평생 돈을 모아 이제 살만하게 됐다'고 뿌듯해하는 중년 가장들의 자존심을 '투기'라는 이름으로 재단한 것만큼 큰 부작용은 없어 보인다.

다시 50대 여성의 사연으로 들어가보자.

그는 다가올 다주택 세금폭탄을 피하려고 집 한 채를 정리할까 고민 중이다.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에 포함돼 종합부동산세 중과 최고세율이 6%로 상향되면 현재 2주택 합산 보유세가 1000만원 가까이 더 부과되기 때문이다. 은퇴한 부부로서는 매년 이를 감당한다는 것은 부담이다. 그는 고민의 와중에 정부가 권한과 인력이 확대된 부동산 감독기구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한번 상심했다.

정부가 새로 꾸리는 부동산 감독기구가 어떻게 기능을 할지는 기대 반 우려 반이다.
다만 이를 통해 재차 국민의 일부가 투기꾼으로 취급당한다고 느끼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옥상옥, 감시국가 논란은 차치하자. 새롭게 생기는 이 기구가 가장 먼저 고위공직자 등 소위 '있는 분'들에게 추상 같은 잣대를 들이길 기대한다.
정의를 세우되 돌아선 부동산 민심을 돌리는 일도 잊지 말아야겠다.

kimhw@fnnews.com 김현우 건설부동산부 차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