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무늬만 그린 뉴딜은 안된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17 17:10

수정 2020.08.17 17:10

기후이변이 부른 최악 수해
탄소배출 줄이지 못하는 한
태양광도 수소경제도 공허
[구본영 칼럼] 무늬만 그린 뉴딜은 안된다
역대급 물난리에 온 국민이 화들짝 놀랐다. 딴 나라 일처럼 보였던 기후변화의 심각성도 실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광복절 경축사에서 기후이변 극복을 다짐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그린 뉴딜'은 꼭 가야 할 길이란 생각도 든다.

그린 뉴딜은 그린(green)과 뉴딜(New Deal)의 합성어다. 에너지 전환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환경투자를 통해 경제도 살리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그 일환인 현 정부의 태양광 진흥책이 이번 장마로 사달이 났다. 전국 여러 곳의 산비탈에서 태양광 설비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드러난 황톳빛 속살이 그린해 보일 리는 만무하다.

그린 뉴딜의 핵심 과제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감축이다. 유럽연합(EU)의 '그린 딜'도 그렇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는 결과적으로 뒷걸음질한 꼴이다. 탄소를 흡수할 나무 232만여그루를 베어내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고 궂은 날씨에 백업용 화전을 돌리느라 탄소배출은 그대로 계속하면서다.

태양광은 날씨에 좌우된다. 일조량을 확보하려 토지를 과다사용하게 된다. 문재인정부가 에너지 전환의 롤모델로 삼는 독일은 우리보다 평지가 많다. 그런데도 일기가 나쁠 때 운용하는 갈탄발전소가 내뿜는 탄소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애초 태양광은 국토의 약 70%가 산지인 한국적 지형과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붕 위에 소규모 패널을 설치해 가정용 에어컨 전력의 일부를 감당하는 정도라면 몰라도….

이번 산사태가 태양광 탓만이 아니란 주장도 있다. 집중호우로 인해 불가항력이었다는 것이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과속 탈원전에 기반한 태양광 진흥의 한계는 충분히 드러났다고 봐야 한다. 산비탈 아닌 평지에 대용량 패널을 설치할 때의 고비용은 차치하자. 어차피 "하루 24시간 돌아가는 원전을 4시간도 안 되는 태양광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정용훈 KAIST 교수)면 그렇다. 전기가 끊기지 않으려면 나머지 20시간은 탄소를 배출하는 가스발전기를 돌려야 하는 까닭이다.

그린 뉴딜의 다른 축인 수소경제도 길을 못 찾고 있는 인상이다. "2030년 수소차와 연료전지 모두 세계시장 점유율 1위 목표"라는 로드맵은 화려하다. 그러나 속 빈 강정이다. 생산·저장·운송·활용 등 수소생태계에서 '활용'에만 치우쳐 있어서다. 아무리 좋은 수소차를 만든들 연료인 값싼 수소가 없으면 그림의 떡이다. 얼마 전 미국 수소트럭업체 니콜라가 대박을 터뜨린 원동력이 뭘까. 1억달러를 투자한 한화가 운영권을 확보한 1200개 충전소를 채울 수소가 차질 없이 공급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정부도 2025년까지 액화천연가스(LNG)를 개질해 얻는 수소생산기지를 짓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도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에 '그레이 수소'라는 오명을 듣게 된다. 반면 미국과 EU, 심지어 이웃 일본·중국조차 기존 원전의 값싼 전력이나 4세대 원전의 고온 열에너지를 활용해 '그린 수소'를 대량 생산하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무늬만 그린 뉴딜'을 고수한다면 결말은 뻔하다.
기후변화 대응과 신성장동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못 잡는다는 얘기다. 이제라도 문재인정부가 "수소경제를 위해서도 원전은 필수"(서균렬 서울대 교수)라는 고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복잡계인 에너지 문제를 '원전은 악, 태양광은 선'이란 식으로 접근하는 단세포적 이분법에서 벗어날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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