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IPTV를 왜 만들었더라?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18 16:52

수정 2020.08.18 18:05

[이구순의 느린 걸음] IPTV를 왜 만들었더라?
"연휴 동안 나갈 수도 없고,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3개나 봤어." "나도 넷플릭스 영화, 드라마 보느라 폰을 놓을 틈이 없었어." 코로나19 재확산 조짐으로 외출이 쉽지 않았던 3일 연휴 끝, 직원들은 너나없이 스마트폰으로 영화, 드라마 본 얘기들을 꺼낸다.

나이 먹은 사람 티 낸다고 싫은 소리 듣겠지만,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지금은 너무 자연스러운 스마트폰 영화·드라마 보는 일이 10년 전만 해도 아주 생경한 개념이었다. 인터넷망을 TV에 연결해 방송 프로그램을 볼 수 있도록 해도 좋은지를 두고 정부와 기업들이 5년 넘게 논쟁을 벌였다. 그러다 2008년에야 TV 수상기에 인터넷선을 연결한 IPTV라는 서비스를 시작한 기억이 불과 10년 전이다.

며칠 전 KT가 IPTV 서비스에 넷플릭스를 추가한다는 발표를 봤다.
그 발표에 10년 전 논쟁 틈새에 끼어있던 기억이 소환됐다. IPTV를 왜 만들었더라? 넷플릭스를 연결하는 게 KT의 IPTV 사업전략인가?

2008년 정부는 통신과 방송을 융합한 새로운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성장이 정체된 통신회사들에 추가 매출이 보장되는 사업허가를 내줄 테니 통신과 방송을 융합한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콘텐츠에 투자하라고 요구했다.

IPTV 도입 필요성을 가장 강력하게 주창했던 KT는 정부 요구에 대해 사업계획서를 통해 적절한 콘텐츠 구매비용 지급, 디지털콘텐츠 펀드 투자, 영세·지역 콘텐츠 사업자의 제작·유통 지원, 관련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콘텐츠산업 발전 도모를 약속했다.

통신회사들은 그렇게 10년간 사업을 했다. 유선전화·초고속인터넷 같은 통신서비스만으로는 성장이 어려웠던 통신회사들은 IPTV로 10년간 매출을 늘렸다. 그런데 그 대가로 지불하겠다던 통신방송 융합 새 서비스와 콘텐츠는 만들었을까? 눈에 띄는 새 서비스와 콘텐츠가 성공의 결과를 낳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노력한 흔적은 있는 걸까? 그러고는 'IPTV 대장' KT가 넷플릭스를 대신 팔아주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전 약속이라지만, 정부는 점검이라도 하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부는 약속대로 통신회사들에 당장 매출이 늘어날 사업 혜택을 줬다. 그런데 기업은 혜택의 대가를 이행했는지, 정부와 국민에게 약속한 융합산업은 어떻게 됐는지 점검하는 것이 정부 역할 아닐까 싶다.

KT는 가만 둬도 가장 잘나간다는 넷플릭스를 IPTV에 연결해 넷플릭스의 대리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10년 전 사업계획 한번쯤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IPTV로 무엇을 하려 했는지, 국민과 정부에 했던 약속은 그냥 계획서 한 페이지로 묻어도 좋은지 말이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세계 최고라고 하는 한국의 통신망을 헐값에 쓰고 있다는 논란의 가운데 있지 않은가. 한국 통신망의 자존심인 KT는 그 값을 제대로 받기로 했는지도 스스로 물어줬으면 한다. 넷플릭스로 소비자 편익을 높이겠다는 게 KT의 발표였지만 정작 그 발표는 그 흔한 인터넷 포털 검색어 순위에도 못 올랐다.
어디선가 뭔가 잘못 짚은 것은 아닌지 종합적으로 점검해 볼 일 아닌가 싶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블록체인팀장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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