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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갈등사회 관리와 경제성장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19 18:05

수정 2020.08.19 18:05

[fn논단] 갈등사회 관리와 경제성장
우리나라는 갈등 공화국인가? 국민 10명 중 약 8명은 사회갈등이 심하다고 여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7년 사회갈등 인식조사 결과다. 갈등유형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진보와 보수 간 이념갈등'으로, 응답자의 85%가 동의했다. 이어 빈부격차나 노사관계 등 경제적 갈등 그리고 세대 간 갈등 순으로 지적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갈등지수는 낮아지지 않고, 오히려 갈등의 유형은 다양해지고 심화했다. 갈등은 분쟁으로 이어져 송사를 겪고 있는 국민이 8명당 1명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사회적 갈등지수나 신뢰도 비교에서 한국은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사회갈등은 경제성장과 민주화가 심화하면서 불거졌다. 갈등 형성은 압축성장에 따른 물질적 풍요만큼 시민의식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 이기주의가 만연하거나, 전통적 유교 윤리가 붕괴하고 공통 가치가 사라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전문가 진단은 집약된다. 갈등의 존재는 한편으로는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의사가 자유롭게 표출돼 건전한 정치발전의 계기로 작동할 수 있다. 다만 갈등이 심화하기 전에 순화되거나 사후적으로 조정하는 메커니즘이 없다면 사회갈등은 누적돼 경제성장을 훼손할 수 있다.

사회갈등이 경제에 미치는 경로는 다양하다. 첫째, 자원의 생산적 배분을 저해한다. 기존 산업 관련 이해관계자가 기득권을 유지하려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이나 신산업의 진입을 가로막아 생산요소가 효율적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한다. 둘째, 자원낭비와 생산성 하락이다. 임금과 근로조건 등 노사 간 부단한 갈등 지속으로 생산중단이 빈번하고, 생산현장 질서이완과 적기납품에 대한 의구심도 일으켰다. 끝으로 경제위기나 불황관리 역량을 약화한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갈등관리가 원활하지 않은 나라일수록 외부충격 시 국내 분배갈등이 심화해 경제정책 조정이 어려워진다고 진단했다.

갈등 심화가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다. 민간경제연구소 등의 추산에 따르면 한국은 해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9~27%를 갈등관리비용으로 치르며, 우리 갈등수준이 OECD 평균으로 개선된다면 실질GDP 성장률은 약 0.2%포인트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갈등 해법은 보편적 사고에서 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존 상식에 집착하지 말고 이분법적 사고를 탈피해야 한다. 더욱이 개개인은 불안하고 서로 갈등하는 사회구조로는 미래가 없다. 갈등사회를 벗어나려면 상호 존중하고 존재를 인정하며 공유가치를 넓혀나가야 한다. 관용과 상호 공감의 문화를 만드는 '인간 존엄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도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갈등과 혼란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미국 스탠퍼드대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정체성(IDENTITY)'에서 갈파했다.

갈등관리가 가동하려면 사회적 신뢰가 쌓여야 한다. 상호 불신하면 협상도 상거래도 정책집행도 성과는 빈약하다. 모두가 비용만 치르는 게임을 지속할 필요가 있을까.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 내 대립적 인식이 증폭되지 않게 사안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고, 충분한 토론의 장이 형성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갈등관리 원활화를 위한 조정시스템이 정착되도록 법과 제도 확충이 시급하다.
갈등이 사회변화의 불가피한 산물이라면 사회통합을 더욱 다질 수 있는 촉매제가 돼야 한다.

정순원 전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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