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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억 들인 '유네스코 조선 왕릉', 태릉 1만가구 제동 거나 [태릉 아파트 개발 논란]

김현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23 17:47

수정 2020.08.23 19:41

"35층 고층 아파트, 경관 훼손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 우려"
문화재委서 제동땐 개발 차질
국토부 "저층 배치로 해결 가능"
5000억 들인 '유네스코 조선 왕릉', 태릉 1만가구 제동 거나 [태릉 아파트 개발 논란]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전경. 뉴시스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전경. 뉴시스
8·4 주택공급대책의 최대 신규 택지개발사업인 태릉골프장(1만가구 공급) 개발이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라는 최대 복병을 넘어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계와 지역사회에서는 조선왕릉인 태릉(태·강릉)의 문화재보호구역 인접지에 대규모 고층아파트를 건설할 경우 "사적지 경관 훼손 등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될 수 있다"며 택지개발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반면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문화재 보호와 경관훼손 문제까지 반영해 태릉골프장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 중이라며 "1만가구 공급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태릉골프장 개발계획을 심의할 문화재위원회가 개발논리에 맞서 제동을 걸 경우 태릉 아파트 공급계획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왕릉 경관훼손, 태릉 개발 '뇌관'


23일 국토교통부와 문화계 등에 따르면 정부가 8·4대책의 한 축인 신규 택지 발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태릉골프장 개발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세계문화유산인 태릉의 경관훼손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태릉은 문정왕후 윤씨의 무덤으로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왕릉 8기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우수하다는 평이다.
태릉 옆에는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의 무덤인 강릉이 자리하고 있다.

태릉과 1만가구 아파트 공급예정지인 태릉골프장은 왕복 6차선인 화랑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태릉골프장은 태릉 문화재보호구역 경계로부터 100m 밖이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따른 건축행위 규제를 받지는 않는다. 문화재보호법 제13조에는 시·도지사가 문화재청장과 협의해 문화재구역 경계 500m 이내에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설정할 수 있다. 서울은 두 기관의 협의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문화재구역 경계 100m로 결정한 지 오래다.

그러나 세부 개발계획이 마련되진 않았지만 정부와 서울시가 용적률 상향을 통해 태릉 택지지구에 1만가구를 공급하려면 35층 이상의 고층아파트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어 태릉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태릉과 강릉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건을 검토했던 왕릉 조경전문가 이창환 상지영서대 교수(전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는 "현재 태릉골프장 내 태릉과 강릉을 참배할 때 쉬는 공간으로 활용됐던 연지(연못)가 있다"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당시 태릉선수촌은 철거하기로 합의됐고, 태릉골프장의 경우 내부의 유산을 국가가 관리·보존하기로 하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더욱이 태릉 앞의 경관도 중요하며 유네스코도 이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어 혹여 이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사전에 경관계획에 대해 문화재 영향평가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태릉골프장 1만가구 공급계획을 만드는 과정에서 문화재청과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요건과 문화재법 위반 여부 등을 사전 협의했다"며 "문화재보호구역 경계의 택지에는 주거시설(아파트)이 아닌 공원과 도로를 배치하는 지구단위 계획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왕릉 조망을 해치지 않도록 저층아파트를 경관 범위에 집중 배치하는 식으로 경관훼손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등을 마련해 문화재위원회 심의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재위 제동 시 개발 차질


정부가 태릉골프장 개발을 위해 법적 의무를 떠나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밟겠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태릉이 보존가치가 뛰어난 조선왕릉인 데다 5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부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적지라 문화재위원회의 엄격한 심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의 주변은 대규모 재건축계획안이 부결되거나 보류된 사례가 있다. 지난 2011년 7월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는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조선 태조 계비 신덕왕후의 무덤인 사적 208호 정릉 주변의 대규모 아파트 개발안을 심의 끝에 경관보호 차원에서 부결시켰다.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 소재 사적 207호 홍유릉 주변 개발안도 같은 이유로 보류했다.

한 문화계 관계자는 "세계문화유산인 태릉 경계에 대규모 아파트 건설계획이 나왔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이 (택지개발에 대해) 아무런 소리도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와 관련, 문화재청 관계자는 "(태릉골프장 개발과 관련해) 아직 우리 청의 전체적인 입장은 없다"며 "태릉과 관련해서는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 것이어서 문화재청이 입장을 밝힐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kimhw@fnnews.com 김현우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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