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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다음은 아베다"…‘한·일 관계’ 변화 기대하긴 어렵다 [글로벌리포트]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23 18:01

수정 2021.09.29 20:49

건강이상설 휩싸인 아베 총리, 조기 사임 이미 기정사실화
포스트 아베 놓고 혼전 양상 속 ‘제3 후보’ 가능성까지 제기
변화 갈망하는 국민들에 ‘자민당내 정권교체’로 장기 집권
누가 총리가 되든 징용 배상 등 과거사 문제 강경입장 유지
日 쇠퇴, 中 부상, 韓 성장… 한반도 외교 지형에 변화 감지

"아베 다음은 아베다"…‘한·일 관계’ 변화 기대하긴 어렵다 [글로벌리포트]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다음은 누구인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감 1위를 달리고 있는 '반(反)아베' 주자인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냐, 대중적 인기는 바닥이나 당내 지분이 확실한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이냐, 아니면 제3의 인물이 될 것이냐. 일본 정가는 건강이상설에 휩싸인 아베 총리의 조기 사임을 이미 기정사실화하는 모습이다. 조기 사임의 시기, 아베 총리 복심에 있을 후계자 찾기가 주된 관심사다. '아베 다음'의 '한·일 관계' 역시 주목되는 부분이다. 한반도 외교 지형에 있어 올 11월 미국 대선과 함께 일본 총리 교체 가능성은 일대 변수다.

■차기 총리감 혼전…"아베, 제3후보 점찍었다"

사실 일본의 후임 총리감 찾기는 혼전 양상이다.

아베 총리가 보기에 1, 2위 주자들이 탐탁지 않아서다.
여당 내 '정적'인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에게는 절대로 물려주고 싶지는 않고, 기시다 자민당 정조회장을 밀자니 자칫하면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이시바에게 밀릴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다하라 소이치로라는 원로 언론인은 "후계자는 이미 정해졌다. 좀 의외의 인물이다"(마이니치신문 21일자 인터뷰)라고 밝혀, 아베 총리가 제3의 후보를 밀 가능성을 제기했다.

23일 일본 정가에 정통한 한 인사는 본지에 "스가 요시히데 관방관장, 당내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 이시바, 그리고 제3의 인물이 현재 차기 구도와 관련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스가 관방장관은 자민당 총재 선거에 직접 나서지 않을 것이며, 유력한 후보인 기시다는 이미 후보군에서 제외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제3의 후보로는 고노 다로 방위상,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등이 거론된다. 이시바 전 간사장과 더불어 유력 후보인 기시다 정조회장의 입지가 최근 흔들리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시다 대세론도 만만치 않다. 일본의 한 중견 언론인은 "만일 아베 총리나 자민당이 지금보다 더 망가진다면, 그때는 이시바를 얼굴로 내세울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당내 지지기반을 볼 때)기시다가 자민당 총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

■아베 독주체제와 파벌정치의 쇠퇴

전후 일본 정치는 곧 자민당 역사나 다름없다. 1945년 이후 75년간 3년간(민주당, 2009~2012년)단 한 차례 야당에 정권을 내줬을 뿐이다. 일본 국민들의 보수성와 더불어 자민당이 가진 '장기, 특기'가 컸다. 현 정권이 실정을 하면 현직 총리와 대비되는 성향 내지는 비주류 혁신적 캐릭터를 내세워왔다.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에게 '당내 정권교체'라는 적당한 타협점을 제시함으로써 긴 생명력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과거 비주류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일약 총리에 올랐던 것도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의 실정이 반복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시바 전 자민당 간사장이 무난히 바통을 이어받겠지만, 이번엔 쉽지 않다는 게 일본 정가의 시선이다. 당내 아베 총리의 영향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 당내 견제와 균형을 가능케 했던 파벌 정치가 쇠퇴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차기 후임 총리는 아베 총리 마음 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후 최장수 총리의 그림자다.

각종 여론조사의 차기 총리감 후보로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은 과거 두 차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와 맞붙었다. 아베 독주 체제의 '맞수'라 할 만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가 "이시바에게만은 절대로 주지 않겠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이시바파(중의원 11명)는 그야말로 열세다. 독자적으로는 생존이 어렵다. 당내 세력을 규합이 관건이다. 최근 이시바가 니카이 간사장 등 당내 핵심 키맨들을 연일 만나고 다니는 것도 아베 총리의 사임 시기가 머지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유력 주자 중 한 명인 기시다 정조회장의 최대 약점은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다. 기시다는 합리적이고, 유연한 성향의 '호인'이나, 결정적으로 "꽃이 없다"고들 한다. 일본어에서 사람을 빗대 꽃이 없다는 것은 매력과 색깔이 없다는 말과 같다. 기시다를 향한 일본 정가의 시선이다. 과거 박근혜정부 당시 기시다는 외무상(2012~2017년)을 지냈다. 그를 가까이서 접해본 한 한국의 전직 외교관료는 "그토록 장시간 외무상을 지냈지만, 잔상이 없을 정도로 컬러가 없었던 인사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25%안팎의 지지율을 확보한 이시바와 달리, 기시다가 5% 내외에 불과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을 방증한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가 된다. 현직 총리가 임기 전 사임할 경우, 자민당 총재 선거는 두 가지 방식으로 치러질 수 있다. 하나는 자민당 국회의원들끼리 당 총재 선거를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일반 당원들이 가세한 선출방식이다. 아베 내각 인기가 바닥을 친 상황에서, 국회의원들끼리 총재선거를 치렀다가는 민심의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이번에는 일반 당원들이 가세한 방식으로 선거를 치를 것으로 관측된다.

이 경우, 당내 지지기반이 있는 기시다의 지지율이 50%를 밑돌게 되면 결선투표로 가게 돼 있는데, 자칫하면 이시바에게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제3후보설이 나오는 이유다.

제3후보들로서는 일본 정치의 대표적 '흙수저 무파벌'인 스가 요히시데 관방장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 고노담화의 주역인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의 아들인 고노 다로 방위상(전 외무상), 쇠락한 다케시타파의 계승자인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등이다. 이 중에서도 고노 방위상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아베 총리의 비서실장격인 스가 장관은 권력에 대한 의지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최근 아베 총리와 거리를 두고 있는 니카이 간사장과 지방창생회의 등에서 함께 공개행보를 하고 있어, 포스트 아베로서 부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시각도 있으나 대체적으로는 '킹 메이커'에 머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포스트 아베, 한반도 문제 인식은

"한국이 반길 만한 후보가 있느냐." "극우 유전자(DNA)를 가진 아베 총리와 가장 거리가 있는 후보가 누구냐."

이 두 가지 질문에 일본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아베 다음은 아베다"라고 반응했다. 지금으로서는 누가 일본 총리가 된들, 징용 배상 판결을 비롯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입장에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실제 지난 4월 본지가 인터뷰했던 이시바 전 간사장은 한·일 관계라는 '총론'에 있어선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수출규제, 징용 배상 판결, 북한 안보 위협론에 있어서는 원칙적일 만큼 강경한 입장을 띠었다.

일본의 소식통은 "히로시마 출신인 기시다 정조회장이 (한·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인물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기시다는 원폭 피해 지역인 히로시마 출신으로 그가 속한 기시다파(굉지회) 자체가 주변국과 협력 속에 경제발전에 주력해 온 자민당 내 대표 온건 합리파"라며 헌법 개정 등 군국주의 행보와 관련 여타 포스트 아베들에 비해 소극적일 것이란 점을 시사했다. 한국과 일본 양국 공히 '실패한 타협'으로 여겨지고 있는 한·일 위안부 합의(2015년)에 대해, "당시 청와대와 총리 관저의 작품이라고는 하나, 기시다가 외무상이었기에 (일본으로서도) 타협이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제3의 유력 후보로 급부상한 고노 방위상은 최근 부친(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과 표면적으로는 '다른 길'을 걷는 모양새다. 그의 부친 고노 전 관방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대한 군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피해자에 대해 사죄하는 내용의 고노담화(1993년)를 발표했던 인물이다. 반면, 아들 고노 방위상은 최근 한반도 안보와 직결된 '적 기지 공격능력'과 관련 "한국 등 주변국과 협의할 필요가 없다"등의 강경 발언으로 일본 야후 등 포털사이트에서는 우파 네티즌으로부터 "할 말을 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9월까지 외무상을 지낼 당시에도 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2019년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의 발언 도중, 말을 끊고 들어가 버럭 화를 내는 외교적 결례를 저지르기도 했다. 총리가 되기 위한 우파 포섭을 위한 전략 행보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일본의 외교소식통은 그런 그의 행보에 대해 "고노 방위상은 그래도 고노 요헤이 아들이다"며 "부친으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 있지 않겠느냐. 기본적으로는 친한파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와 달리, '부친과 같은 길을 걷는' 후보도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다. 자민당 비주류인 부친 고이즈미 전 총리가 주류로 편입되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를 매년 참배했던 것처럼, 무파벌의 아들 고이즈미 역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우파세력의 눈도장을 찍으려 한다는 분석이 있다.


일본통인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명예 연구위원은 "동북아에서는 지역 패권을 둘러싼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며 "과거 동북아 패권을 유지했던 일본의 쇠퇴, 중국의 부상, 또 바로 옆의 한국의 성장으로 인해, 누가 일본의 지도자가 되더라도 지금의 한·일 갈등의 구조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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