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제조업 "재택 못해요" 코로나發 '산업 갈등'

이병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30 18:12

수정 2020.08.30 18:12

현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中企
유연근무 도입'대기업 절반수준'
스태프만 재택… 직원간 갈등도
3단계 격상땐 직원 70% 재택
권고사항 그쳐 현장혼선 불가피
제조업 "재택 못해요" 코로나發 '산업 갈등'
#. 제약회사 연구직인 이모씨(30)는 올 들어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한 번도 재택·순환근무를 한 적이 없다. 연구실이 아니면 업무가 불가능해서다. 이씨는 "직장 동료들끼리는 '순환근무는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도 해보지만 회사 측은 일절 언급이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제 실시가 일부 직종과 대기업 등에 한정되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감염 위험을 호소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특히 구조적으로 재택근무에 어려움이 있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현실적 대책 마련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코로나가 불러온 산업계 내부갈등인 셈이다.
코로나 방역 수준을 놓고 정부와 일부 종교계가 갈등을 빚은 것과는 궤를 달리하지만 '노사, 노노 갈등'을 유발할 수 있어 해법 마련 필요성이 제기된다.

■중기 유연근무, 대기업 '절반 수준'

30일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기업 34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유연근무제 실시 현황에 따르면 대기업은 57.3%가 '시행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30.3%에 불과했다. 기업 전체는 36%였다. 코로나가 확산된 올해 7월 16일부터 20일까지 조사 결과다. 2017년 19%, 2018년 23%와 비교해 큰 폭으로 늘었다.

주목할 부분은 재택근무, 시차출퇴근, 순환근무 등 유연근무제를 시행하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실시여건 부족' '타 부서와 협업 문제' '과중한 업무' 등이 유연근무제를 실시할 수 없는 이유라고 답했다.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고객 대면이 불가피한 영업직이나 출근해야 업무가 가능한 현장직 등 직장인 사이에서는 근무형태에 대한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사 고객관리 업무를 하는 박모씨(27)는 "회사 내에서 (재택근무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고객과 대면해야 하는 업무라 (나는) 아마 힘들 것" 이라고 토로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A씨도 "올해 초에 며칠 해봤는데, 기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으면 하나 마나인 것 같다"며 "최근에는 정상 출근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조 대기업들은 1차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예상보다 빨리 진정되면서 이후 최근 재확산까지 재택을 최소화해 왔다. 24시간 가동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의 경우 평시에는 4조 3교대로 근무했지만, 코로나 국면에는 확진자 발생 근무조 자가격리에 대비해 1교대 수준의 대체인력을 확보해 대응하는 정도에 그쳤다. 생산현장과 스태프 근로자 간 생길 수 있는 갈등을 회사 내부에서 판단하기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재확산세가 거세지며 사업장마다 재택을 둘러싼 임직원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구조적으로 현장 근로자는 스태프 직원에 비해 재택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지금 당장 스태프 직원만 재택을 하겠다고 공지하면 사내갈등은 불보듯 뻔하다. 회사가 결정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연근무 '권고'일뿐

정부가 이날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 수준으로 강화했지만 기업에는 구체적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잡히지 않아 최악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가 시행됐을 땐 재택근무 논란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3단계가 되면 정부는 민간기업에도 필수인원 약 30%를 제외한 전원 재택근무를 권고한다.

그러나 여전히 권고일 뿐 의무는 아니어서 현장의 혼선이 불가피하다. 이에 직장을 통한 감염 위험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정부와 경제계가 만나 구체적인 재택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등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이런 혼란한 상황이 정리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두루뭉술한 지침은 기업 경영진에 책임을 미루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소비자가전(CE), IT·모바일(IM) 부문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9월 한 달간 재택근무를 시범 운영한다. 다만 생산인력을 제외한 디자인, 마케팅, 개발 등 인력에 한한다.
LG전자도 지난 27일부터 전 사업장에서 생산직을 제외한 사무직의 30%가 리모트워크(원격근무)에 들어갔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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