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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리니언시 전속고발제 폐지와 담합 근절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31 18:05

수정 2020.08.31 18:05

[여의도에서] 리니언시 전속고발제 폐지와 담합 근절
1996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리니언시(담합행위 기업의 자진신고시 처벌 경감제도)는 사업자가 담합한 사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자진신고하거나 증거 제공 등의 방법으로 조사에 협조한 경우 과징금을 100% 면제해주고 2순위 신고자에게는 과징금의 50% 감면 혜택을 준다. 강제조사 권한이 없는 공정위 입장에서는 은밀히 자행되는 담합행위를 적발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다.

기업 입장에서도 자칫 수십억,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라도 하면 몇 년치 영업이익을 날려버릴 수 있던 악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데다 검찰 고발도 면할 수 있어 일거양득인 측면도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하는 담합행위의 경우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는 공정위의 고발이 있는 경우에만 검찰이 공소제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0년부터 유지되고 있는 이 제도에 변화가 감지된다. 20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공정위가 지난 25일 국무회의에 상정, 의결된 것이다.
여당의 과반수 이상 의석 확보로 법안 통과 가능성은 높아진 상황이다.

전속고발권 폐지를 골자로 한 이 법안이 통과되면 가격·입찰 담합 등에 대해 누구든지 고발이 가능하다. 기업 입장에선 시민단체나 경쟁사 등의 전방위적 압박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 특히 공정위와 별개로 검찰이 독자적으로 인지수사를 벌일 가능성도 커진다.

현재 검찰은 이 법 통과를 염두에 두고 내년 1월까지 담합 자진신고자 형벌을 감면하는 '리니언시' 제도를 시범시행 중이다. 1순위 자진신고자(수사 개시 전 증거 제공 담합 법인 및 개인)에게는 기소유예 또는 불기소 처분, 2순위 신고자(수사 개시 이후 협조한 법인 및 개인)에게는 감경 처분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 담합을 한 기업이 자신신고하면 과징금 부과를 면제받고 고발을 면하지만 앞으로는 공정위 조사에 이어 검찰 조사까지 이중 조사를 받는 기업의 경영환경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정위와 검찰, 두 기관의 자진신고 창구 일원화가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반대로 공정위 고발이 없더라도 검찰의 신속한 자체 수사가 가능해져 기업의 리스크를 빠른 시간 내 해소할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도 거론된다.

이런 논란 속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담합을 근절할 근본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담합을 통해 재화의 가격을 인상시키더라도 현재 소비자들은 별도의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를 직접 입증한 경우에만 배상이 가능하다. 증권 분야에만 국한된 집단소송제 도입 논의와 함께 리베이트 적발 시 약가인하제 같은 직접적으로 소비자에게 후생을 제공하는 방안도 고민해 봐야 한다.

허위자백에 따른 처벌 강화도 병행돼야 한다. 현행 법체계에선 담합 허위자백을 하다 탄로가 나더라도 추가적 과징금이나 형사 가중처벌 같은 불이익이 없다. 때문에 '밑져야 본전'이란 인식하에 거짓으로 담합 신고를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는 게 관련업계의 전언이다.
리니언시 같은 플리바게닝(자백이나 타인 범죄를 증언시 처벌 감경제도)이 도입된 미국의 경우 한 비영리 인권단체가 20년간 유죄확정 사건을 재검증한 결과 290명이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리니언시 전속고발제 폐지는 분명 수사 편의 증대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섣부른 제도 도입은 되레 실체적 진실 발견을 요원하게 만들 수도 있는 만큼 부작용을 방지할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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