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북한 100℃] '사랑의 불시착' 같은 결말은 왜 불가능했을까

뉴스1

입력 2020.09.05 10:00

수정 2020.10.15 09:28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포스터.© 뉴스1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포스터.© 뉴스1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스틸컷.© 뉴스1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스틸컷.© 뉴스1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스틸컷.© 뉴스1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스틸컷.© 뉴스1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스틸컷.© 뉴스1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스틸컷.© 뉴스1


[편집자주][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지난 2월 종영한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최근 일본에서 '제4차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당시 드라마가 '열린 결말'로 종영한지라 나는 문득 둘리 커플(리정혁+윤세리)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패러글라이딩을 타다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 상속녀 윤세리(손예진)와 그를 숨겨주다 사랑에 빠진 북한 장교 리정혁(현빈 분)은 결국 남도 북도 아닌 '스위스'에서 재회한다.

이후 얼마나 자주,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들의 근황이 궁금해진 건 최근 본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때문이다. 40년째 북한 남편을 기다리는 루마니아 아내 제오르제타 미르초유가 둘리 커플에 대한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그는 왜 드라마처럼 남편을 만나지 못했을까.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드라마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결말을 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번엔 열린 결말이 아닌,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 그대로를 마주해봤다.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낯선 땅에 보내진 전쟁고아들, 그 속에서 꽃핀 사랑

영화의 배경은 북한이 '위탁교육'이라는 이름하에 전쟁고아들을 동유럽에 이주시키던 1950년대다. 냉전 강화되던 시기 소비에트 연방은 체제를 선전할 목적으로 루마니아,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각국에 학교와 기숙사를 세웠고 북한은 이 곳에 고아들을 보냈다.

위탁교육은 이념을 정당화하는 수단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사람들의 만남을 가능하게 했다. 미르초유는 북한 아이들을 데리고 루마니아에 온 교사 조정호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까지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을 갈라놓은 것도 결국 '이념'이다. 김일성 주석은 소련이 붕괴되고, 자신의 체제에 반기를 드는 '8월 종파사건' 등이 벌어지자 1956년 아이들의 송환을 결정했다. 약 7년간 유럽의 영향을 받은 아이들의 존재가 가볍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 조정호는 1977년 신산의 탄광으로 이주했다는 편지를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미르초유는 북한 대사관에 남편의 생사를 물어보면 "실종됐다"거나 "사망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남편의 사망 날짜도 매번 바뀌어 사실상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다.

위탁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동유럽은 교사와 아이들에게 최상의 숙소와 음식을 제공했지만 결국 그들의 '감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떠나는 것에도 돌아가는 것에도 그들의 의지는 없었다.

5000명의 아이들 속에는 남한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이 사연이 북한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주목하고 싶다. 당시 한반도의 전선은 수시로 이동했고 남한 아이들도 북한 아이들과 함께 동유럽에 보내졌다고 한다. 출생지가 '남한강', '(경기도) 이천'이라고 적혀 있는 아이도 있었다.

동유럽에 머물렀던 전쟁고아들은 5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이들 중 몇 명이 남한 아이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한국전쟁의 상처가 남북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처를 품은 건 결국 '사람'이었다. 유럽의 교사들은 '아이들을 안아주거나 애정을 보여줘선 안 된다'는 금기 사항을 아무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부모를 잃은 상실감에 정서적 불안감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정성껏 돌봤다. 아이들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어머니 혹은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동유럽 동급생들도 이들이 특별히 보살핌을 받는다고 해서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이들은 북에서 온 아이들을 운동신경이 발달하고 승부욕이 강한 친구들로 기억하고 있었다. 신장이나 체격이 좋은 유럽 아이들에게도 뒤지지 않았다고 한다. 떠나는 열차 앞에서 추억 하나하나를 되새겼던 기억을 품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이제는 일흔, 여든이 된 이들이 어쩌면 짧은 순간이었을 그 만남을 평생 잊지 못하는 건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이야기다. 반면 이들이 '우연히' 라도 단 한 번, 만날 수 없었다는 건 냉담한 현실이다. 나는 영화 말미 전해진 그들의 영상메시지가 꼭 전해지길 바랐다.

"우리가 함께했던 찬란한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할 거야."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척 궁금하구나. 남과 북 두 나라의 평화를 나도 언제나 기원할게."
"혹시 우연히 이 영화를 본다면 백살 넘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자."

닫힌 결말,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

남북 전쟁고아 이야기는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다. 그런데 어떻게 기록되고 전해졌을까.

나는 기억되고자 했던 이들이 스스로 기록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북한으로 송환되기 전 마을에 새워진 돌이나 비석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선생님, 친구들과 부지런히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북한에 돌아가서도 자신을 돌봐준 이들에게 힘이 닿는 데까지 편지를 보냈다. 영화는 그 기록들을 찾아가는 데 부터 시작한다.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는 신호가 아니었을까.

'사랑의 불시착'의 결말을 보고 마냥 개운치만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의 사랑이 지속되기 어려운 현실이 명백히 존재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가 보여준 '김일성의 아이들' 사연에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소중한 인연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어쩌면 '닫힌 결말'로 기억해야 할 우리 역사의 한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