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유통

[라방탐구下]감시요원 고작 1.5명…사전심의 없는데 사후 규제도 못해

뉴스1

입력 2020.09.16 06:45

수정 2020.09.17 15:55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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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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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포스트코로나시대 가장 핫한 시장은 단연 '라이브커머스'(라방)다. 몇 해 전 혜성처럼 등장해 순식간에 유통업계를 장악했다. 소비자들은 외출하지 않아도 상품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한 라방에 열광했다. 하지만 라방은 아직 관련법도, 정의도 모호한 '규제의 공백'에 놓여 있다. 모호한 '규제 공백' 속에서 거침없이 팽창하고 있는 라이브커머스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이거 소비자 기만 아닌가요?"

직장인 A씨는 최근 한 라이브커머스에서 '탈모방지샴푸'를 샀다가 곧장 폐기했다. 호스트(진행자)가 '영양분이 진피층까지 침투해 모근을 꽉 잡아준다'는 말을 믿고 주문했지만, 평소 쓰던 제품보다 성능이 훨씬 떨어졌다.

라이브커머스는 TV홈쇼핑과 달리 방송법상 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표현이 다소 과장되는 경우가 많다.
허위·과장광고를 예방하거나 사후에라도 처벌할 방법은 '깜깜이' 수준이다. 이 때문에 최고 강점으로 내세우는 '무형식(無形式) 방송'이 도리어 소비자 '불신'을 키우고 있다.

◇똑같은 '생방송'인데…TV홈쇼핑만 '사전 심의' 왜?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TV홈쇼핑과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중에서 TV홈쇼핑에 대해서만 방송법상 심의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TV홈쇼핑은 '방송'이라는 공중매체로 분류되지만, 라이브커머스는 전자상거래의 일종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분류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천지 차이다. TV홈쇼핑은 공영방송에 준하는 엄격한 책임과 의무를 진다. 하지만 라이브커머스는 사실상 '자유지대'다.

TV홈쇼핑은 '방송법', '상품소개 및 판매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 2가지 법에 따라 고강도의 깐깐한 심의를 거쳐야 한다. 업체 선정, 상품 품질 보증, 광고 표현에 대한 엄격한 사전 심의받은 후에야 방송을 편성할 수 있다.

TV홈쇼핑의 생방송은 실시간으로 감시를 받는다. 방송이라는 '공중매체'를 통해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사소한 표현 하나에도 행정처분이나 과태료를 물기 십상이다. 보편타당하게 검증되지 않은 의학용어를 사용하거나, 호스트가 느낀 개인적인 소감을 발설하는 것만으로도 허위·오인광고로 규정돼 철퇴를 맞는다.

사회적 물의를 낳을 수 있는 발언도 삼가야 한다. 방심위 광고심의소위원회는 지난 2일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및 고정관념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현대홈쇼핑과 홈앤쇼핑에 행정지도인 '권고' 처분을 내렸다. 호스트가 방송 도중 "민낯으로 방송을 어떻게 해요", "(주름) 관리를 너무 안 하고 산 사람 같고" 등 여성의 외모 치장을 당연시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한 홈쇼핑업계 관계자는 "할인 상품을 표현할 때도 '세일'은 방송에서 쓸 수 있지만, '가격 인하'는 제재 대상이 된다"며 "아주 사소한 표현이나 문구에 대해서도 상당히 엄격한 규제가 적용된다"고 귀띔했다.

반면 라이브커머스는 표현과 형식에 제한이 없다. 생방송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방식은 TV홈쇼핑과 동일하지만, 인터넷방송이나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의 일종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욕설·음란·사기 등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경우에만 사후 제재가 가해질 뿐이다.

따라서 과장되거나 오인의 소지가 있는 '아슬아슬한 표현'도 얼렁뚱땅 넘어가기 일쑤다. 한 라이브커머스에서 화장품 판매 방송을 진행한 호스트는 해당 상품에 함유된 '레티놀' 성분을 강조하면서 "2주 만에 확실한 변화가 가능하다", "피부에 탄력이 생긴다"고 광고했다.

'탈모방지샴푸' 판매 방송을 연 한 호스트는 "영양분이 진피층을 뚫고 들어가서 모근을 꽉 잡아준다"며 제품의 성능을 홍보했다. 다른 호스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연출을 하면서 "일주일간 써봤더니 얇았던 모발이 강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규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명백한 허위·과장·오인 광고는 방심위의 사후 모니터링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행정처분을 통해 '사후 규제'를 받을 수 있다. 방심위 관계자는 "라이브커머스 생방송은 TV홈쇼핑처럼 엄격한 '사전 심의'를 할 수는 없지만,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에 따라 '사후 심의'는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사후 규제' 무용지물인데…"가이드라인이라도 만들어야"

문제는 '사후 규제'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거나, 제약이 많아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점이다.

방심위에서 라이브커머스 생방송을 모니터링하는 직원은 1.5명에 불과하다. 허위·과장·오인 광고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 업무를 전담으로 수행하는 직원은 단 1명이다. 다른 직원이 업무를 돕고 있지만, 다른 업무와 병행하기 때문에 0.5명으로 치고 있다.

밤낮없이 쏟아지는 라이브 방송을 일일이 모니터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마저도 라이브커머스 하나에만 집중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들의 업무에는 아프리카TV, 팝콘TV 등 인터넷방송은 물론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에서 스트리밍되는 모든 개인방송이 포함된다. 방심위 통신심의국 정보문화보호팀 소속 모니터링 담당 직원 1.5명이 온라인에 범람하는 개인방송을 전부 살펴보는 실정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국내 1위 웹 캐스팅 업체인 '아프리카TV'와 2위인 '팝콘TV'가 하루 동안 송출하는 방송 시간만 7만5000시간에 달한다"며 "1.5명의 직원이 모든 개인방송 동영상을 모두 커버하는 것은 솔직히 힘들다"고 털어놨다.

공정위의 '사후 조사'도 한계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생방송의 특성상, 허위·과장 광고 소지가 있더라도 VOD 형태로 남아있지 않다면 증거 수집이 어렵다.

공정위 관계자는 "호스트나 입점 업체가 상품을 잘못 광고했다는 신고가 접수되더라도 방송 영상이 남아있지 않다면 조사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현행 제도에 허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이어 "라이브커머스는 플랫폼, 호스트, 판매자가 각각 소속이 다른 경우가 많다"며 "호스트가 과장된 말을 해서 소비자가 오인했을 때,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결국 라이브커머스 생방송에 대한 심의는 각 플랫폼 사업자의 '양심'과 '자율'에 기대는 실정이다.

롯데홈쇼핑은 자체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몰디브'의 방송을 편성할 때 TV홈쇼핑만큼 엄격한 사전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 카카오 쇼핑라이브는 Δ상품 경쟁력 Δ브랜드 리스크 Δ품질 검토 Δ방송 표현 등에 대한 심사와 협의를 통과한 업체에만 생방송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반면 생방송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은 라이브커머스도 있다.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그립'(Grip)에서 판매자(셀러) 등록을 하려면 브랜드, 상호명, 연락처, 사업자등록증 및 등록번호 등 필수 요건만 갖추면 된다. 그립 관계자는 "셀러 입점 신청이 접수되면 내부 검토를 거쳐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며 "크게 이슈가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 승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규제 공백'에 빠진 라이브커머스 생방송 실태를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TV홈쇼핑에만 과도하게 집중된 '규제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는 TV홈쇼핑와 라이브커머스를 구분해서 인식하지 않는데, 법적 분류가 다르다는 이유로 한쪽(홈쇼핑)은 엄격히 규제하고 다른 한쪽(라이브커머스)은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라이브커머스도 홈쇼핑처럼 방송을 통해 물건을 사고파는 상거래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정부가 나서서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이 준수해야 하는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미비한 법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도 "현행법은 TV홈쇼핑에 과도한 제재를 가해 시장의 발전 가능성을 억제하고, 라이브커머스는 아예 풀어줘서 소비자 피해를 예방할 수 없다는 양면성의 문제가 있다"며 "한쪽은 적절히 규제를 완화하고, 다른 한쪽은 최소한의 소비자 보호 장치를 마련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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