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추미애와 공정의 역습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16 17:30

수정 2020.09.17 10:45

검찰개혁 명분 이미 소멸
불공정 스캔들에 민심떠나
1년 전 조국 사퇴 데자뷔
[노주석 칼럼] 추미애와 공정의 역습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황제휴가' 의혹이 불공정 이슈로 부풀어 오르면서 정국의 블랙홀이 됐다. 자칫 '제2의 조국사태'로 번질 기미마저 엿보인다. '검찰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검찰장악'의 총대를 멘 추미애 아들 사건의 끝이 어디일지 모두 궁금해한다. 공수처 설치 같은 검찰개혁 명분은 소멸됐다. '추미애 사단'이 추는 검무에 기대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촛불의 힘으로 집권한 문재인정부에 있어서 '공정'은 성배다.
문재인정부 탄생을 지지한 2030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판단의 기준이 됐다. 불공정 이슈가 터질 때면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내걸었던 슬로건을 떠올린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요즘 시중에 "기회는 불평등, 과정은 불공정, 결과는 정의롭지 못할 것"이라는 패러디가 나돈다.

젊은 세대에게 문 대통령은 공정의 아이콘이었다. 공정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아빠찬스' '엄마찬스'의 난무와 내 편만 챙기는 '불공정 스캔들'에 실망했다. 반격이 시작됐다. 대통령과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도가 곤두박질쳤다. 20대·남성·서울지역 유권자가 등을 돌렸다. 보수진영과 다름이 없는 기득권 집단이라는 실망감 탓이다.

한국 사회에서 입시와 병역, 취업은 '공정 척도의 3종 세트'라고 일컬어진다. 한때 "공무원이 정하는 게 공정"이라고 조롱받을 정도로 공직자들의 일탈과 부정이 물을 흐렸다. 문 정부 때문에 세상이 바뀐 걸 문 정부 공직자들만 모르는 듯하다.

미국의 도덕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은 이 분야의 바이블이다. 롤스가 갈파한 정의의 제1, 제2 원칙은 평등과 공정을 바탕으로 하는 정의론이다.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이 법 앞의 평등과 공정을 구현할 대표주자로 내세운 조국·추미애 두 법무장관이 불공정의 덫에 걸렸다. 편법과 특혜 논란을 넘어 민심의 역린을 건드렸다.

추미애 앞에 놓인 가을 정치 스케줄이 심상치 않다. 지난 14일 시작된 나흘 일정의 국회 대정부질문 공세와 8개월을 질질 끌어온 검찰의 아들 소환조사가 신호탄이다. 결국 추석연휴 가족들의 밥상머리에서 열릴 민심재판의 추이가 추미애의 거취를 쥐고 있다. 10월 7일부터 열릴 국감이 임계점이다. 불과 1년 전 조국 사퇴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토록 강고하던 조국도 법무부 국감 하루 전에 사퇴했다.

추미애는 20여건에 이르는 고소·고발사건의 당사자다. 검찰소환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볼 때 현직 장관의 신분으로 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임기를 1년 반밖에 남기지 않은 문재인 정권은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치러야 한다.
벼랑길 지지율을 버텨낼 대통령, 집권여당은 없다. 여당 대표를 지낸 추 미애 스스로 결단할 시간이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실화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joo@fnnews.com 노주석 에디터 정치 경제 사회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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