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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하청업체 근로자들, 파견사업장 일부 점거..업무방해 아냐“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20 09:00

수정 2020.09.20 08:59

대법 “하청업체 근로자들, 파견사업장 일부 점거..업무방해 아냐“
[파이낸셜뉴스] 하청업체 직원들이 실제 파견근무하는 원청업체 사업장 일부를 점거한 채 쟁위행위를 한 경우 일률적으로 업무방해로 볼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파견사업장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행해진 적법한 쟁의행위라면 파견사업장 사업주는 업무에 지장이 초래되는 결과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퇴거불응 및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 등 한국수자원공사 시설관리 용역업체 직원이자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대전지부 수자원공사지회 조합원 5명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수자원공사 본사 시설관리 용역업체인 F사와 청소용역 업체 S사의 직원들인 김씨 등은 지난 2012년 6월 F사 및 S사와의 임금 단체 협상이 결렬되고 노동위원회 조정마저 성립되지 않자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수자원공사가 사용자 지위에 있지 않아 쟁의행위의 상대방이 될 수 없는데도 수자원공사를 압박,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신고되지 않은 장소에서 3일간 확성기를 이용해 소음을 발생시키는 방법으로 수자원공사 사업장 일부를 점거한 채 농성을 하며 수자원공사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에게는 집회신고 장소로 나가라는 수자원공사 측의 수차례 퇴거 요구를 정당한 사유없이 불응한 혐의도 적용됐다.


김씨 등은 재판과정에서 “적법한 쟁의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고, 하청업체 근로자로서 쟁의행위가 당해 사업장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당시 위법성 인식이 없었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1심은 “원고용주가 아닌 수자원공사의 사업장 내에서 이뤄진 각 집회를 적법한 쟁의행위로서 위법성이 없다거나, 피고인에게 위법성의 인식 내지 기대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며 김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나머지 조합원들에게 1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파견근로자들이 실제 근로를 제공하는 사용사업주의 사업장 내에서 파견사업주를 상대로 쟁의행위를 하는 경우를 일률적으로 위법하다고 볼 것은 아니”라며 “사용사업주의 재산권 또는 시설관리권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행해진 쟁의행위라면 사용사업주에게 그와 같은 쟁의행위로 인해 업무에 지장이 초래되는 결과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 그러한 쟁의행위는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위법성이 없음)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수급업체들 소속 근로자의 헌법상 단체행동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선 이들의 근로제공이 현실적으로 이뤄지는 장소인 수자원공사 사업장에서 쟁의행위가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반면, 수급업체들 본사나 사무소의 위치로 인해 피고인들이 수급업체들의 사업장에서 단체행동권을 실효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측면이 있었다”며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이어 “피고인들은 쟁의행위 일환으로 구호를 외치고 노동가를 제창하거나 행진을 하는 등 집회나 시위에서 통상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여 집단적인 의사를 표시했고, 이는 비교적 길지 않은 시간 평화로운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폭력이나 시설물의 파괴를 수반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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