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만능키가 되어버린 ‘혈세 지원’

김현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21 18:15

수정 2020.09.21 18:15

[기자수첩] 만능키가 되어버린 ‘혈세 지원’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태담당 국장은 최근 자본시장연구원 세미나에서 "(현재) 기업 부도율이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아진 상황"이라고 지적하며 부도율 증가 문제를 우려사항으로 꼽았다. 이 같은 기업 부도율, 한계기업 증가를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경기를 무너뜨리는 트리거(방아쇠)가 특정 기업의 부도가 될지, 향후 금리 상승이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통계만 보더라도 한국 기업의 상황은 암담하다. 전경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을 대상으로 한계기업 비중을 조사한 결과 한국 기업 100개 중 18개는 이자도 제대로 못 내는 좀비기업(한계기업)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한계기업 비중은 OECD 회원국 가운데 5번째로 높아 회생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부도율이 올라가는 상황일수록 좀비기업을 가려내는 옥석 가리기는 더욱 중요하다. 자칫 혈세낭비로 이어져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금융시스템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책은행, 시중은행, 증권사 등 금융기관에 책임을 무한대로 떠넘기는 형국이다. 비우량기업 회사채에 지급보증을 제공하는 신보의 P-CBO 지원은 수조원대로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무분별한 지원이 혈세낭비로 이어진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까운 예로 4년 전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수순을 밟으며 국민세금 1조원은 허공에 사라졌다. 산업은행이 최대 6600억원, 신용보증기금이 43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코로나19로 인해 향후 한계기업이 폭증할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친기업적 환경을 만들어 기업들이 스스로 살아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려울 때 확장재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좀비기업을 다루는 칼은 날카로워야 한다.
규제완화 등 친기업적 환경 조성도 동반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에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그러지 않으면 기업 위기 때마다 퍼주기 지원이 되풀이돼 금융기관의 부실로까지 전이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치트키가 돼야 할 혈세지원이 '만능키'가 되어선 안 된다.

khj91@fnnews.com 김현정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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