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이 전시] 아르코미술관 '더블 비전'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26 14:52

수정 2020.09.26 14:52

[파이낸셜뉴스] 사람과 사람이 마주보기 힘든 시대, 2020년 전세계는 난데없는 바이러스의 창궐로 비대면이 일상화됐다. 사람들은 이제 영상 통화와 온라인 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소통을 대체하는 시대가 갑작스레 왔다.

수많은 기술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이 시대와 미래, 인류는 이 기술을 통해 더욱 발전하고, 마침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기술로 인해 더욱 소외되고 버려지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5명의 젊은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말한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지난 24일부터 열린 주제기획전 '더블비전' 전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AI, 알고리즘, 로봇공학 등 최첨단 과학기술을 향한 오늘날의 열망과 판타지, 그리고 그것이 자본주의 생산구조와 결합되었을 때 인간의 활동과 노동 환경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를 살펴보는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영상, 설치, 사운드 등으로 구성되며 참여 작가 김실비, 양아치, 오민수, 이은희, 임영주 5인의 시각언어를 통해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양아치 '샐리' (2019)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양아치 '샐리' (2019)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시장 1층에 들어서자마자 관객들을 맞이하는 작품은 양아치 작가의 '샐리'다. 샐리는 여성화 된 인공지능의 이름이다. 근미래의 언젠가에서 지금의 우리를 향해 영상을 통해 말하는 샐리의 모습은 마치 마론 인형의 얼굴같다. 샐리는 미래의 서울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민수 '아웃소싱 미라클' (2020)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오민수 '아웃소싱 미라클' (2020)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샐리'를 지나쳐 왼쪽을 돌아보면 오민수 작가의 '아우소싱 미라클'이 보인다. 어두운 공간에 수많은 스피커들이 줄에 매달려 위 아래로 움직이며 마치 바람 소리같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 사운드는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현장에서 채집됐는데 작가는 폐허가 된 공간에서 스러져 가는 철골 구조의 소리를 담으며 이 곳에 있다 스러져 간 노동자들을 추모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처한 시장 경제 속 소외된 노동의 가치와 현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오민수 작가의 작품을 지나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면 이어 이은희 작가의 '어핸드인어캡', 임영주 작가의 '세타'를 볼 수 있다.

이은희 '어핸드인어캡' (2020)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은희 '어핸드인어캡' (2020)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어핸드인어캡'은 장애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체의 결함을 판단하는 기준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기술과 과학이 동원되는 방식에 대해 3채널 영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장애라는 어원에 담긴 '일할 수 없는 몸'의 의미를 탐구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은 결함에서 회복하여 일할 수 있는 몸과 구성원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닌지를 묻는다. 나아가 장애를 판단하는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기준은 무엇인가를 질문하며 이러한 이분법적인 기준 안에 존재하는 장애 산업에서 최첨단의 기술이 점차 비대해져 갈 수밖에 없음을 돌봄노동자, 장애 당사자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낸다.

'세타'는 동음의 그리스 단어를 제목으로 한 작품이다. 원어의 뜻인 숫자 '9'와 금융용어로서의 의미, 의학에서 사용되는 의미가 각각 이질적인 것에 착안해 이 개념들을 병치시키는 다채널의 영상 작품을 만들었다. 뇌과학에서 인간이 강한 혼돈과 약한 수면상태에서 발현되는 '세타파'의 상태를 작품에 녹여 알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과학 기술에 대한 막연한 염원과 환상 등 다양한 감정 상태를 드러내고자 했다.

전시장 2층으로 올라가면 김실비 작가의 '회한의 동산'과 이은희 작가의 '블러드 캔 비 베리 베드', 양아치 작가의 '그날, 그 자리에는 창조론자, 비진화론자, 본질주의자, 종말론자, 진화론자, 실존주의자, 근본주의자, 그노시스파, 연금술사, 전체론자, 감리교도, 몽매주의자, 존재론자, 유래론자, 현상론자, 합리주의자, 혼합주의자들이 참석했습니다(그날…)'를 만날 수 있다.

김실비 '회한의 동산' (2018/2020)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실비 '회한의 동산' (2018/2020)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한의 동산'은 성경의 태초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의미와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나 일을 그리워 하고 뉘우치고 한탄하는 '회한'의 정서를 결합한 우화적인 작품이다. 인류가 뱀의 유혹을 받고 후회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현대로 가져와 신에 대한 믿음이 과학 기술로 대체된 상황을 비유한다.

'블러드 캔 비 베리 베드'는 기계에 포착된 신체의 일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점멸하는 듯한 영상 속에서 신체이미지가 기계에 의해 출력되어 유령의 이미지가 되었다가 이내 신체의 주인이 그것을 보고 공포에 질리는 기계이미지와 신체의 연속반응을 보여준다.

'그날…'은 뇌 과학자 박문호 박사의 과학강연 퍼포먼스와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의 조형물을 교차 편집해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업은 과학강연의 서사를 비선형적인 편집과 장면으로 개입하면서 대전 엑스포라는 장소의 무의식을 깨우며, 과학이 수학적 논리체계와 이성의 순수성에 가깝기보다 이데올로기의 영역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전시는 11월 29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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