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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 못올리게 된 집주인들 "집수리 못해줘"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27 17:48

수정 2020.09.28 10:02

임대차3법 ‘수리비 갈등’ 번져
수리의무 세입자에 떠넘기고
원상복구비도 최대한으로 청구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 News1 민경석 기자 /사진=뉴스1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 News1 민경석 기자 /사진=뉴스1


#. 서울 송파구 아파트를 전세 주고 있는 A씨(49)는 며칠 전 집수리 문제로 세입자 B씨와 언성을 높였다. 곰팡이가 핀 벽지, 고장난 형광등과 인터폰, 뻑뻑해진 문고리 등을 수리해달라고 요구한 B씨에게 다 수리해줄 순 없다고 거절하자 두 사람 간에 말싸움이 벌어졌다.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때문에 시세보다 1억원 이상 저렴한 가격에 재계약을 체결한 것도 억울한데 수백만원에 달하는 수리비까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A씨는 "예전에는 세입자가 수리해달라고 하면 대부분 해줬지만 이제는 손해 보는 기분"이라며 "법적으로 집주인에게 수리 의무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2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가을 이사철을 맞아 집주인이 세입자의 집수리 요청을 거부하면서 갈등을 빚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임대인들 사이에서는 전월세 계약서에 집수리 의무를 세입자에게 부담하게 하는 특약사항을 삽입하거나 세입자 퇴거 시 원상복구비를 최대한 청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주요 시설물에 대한 관리 책임과 수리비용 부담 의무는 집주인에게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난방이나 전기시설, 상하수도 등 주요설비의 노후 및 불량에 대해서는 임대인이 고쳐줘야 한다. 반면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파손이나 간단한 소모품 교체 비용은 세입자가 부담해야 한다.

과거에는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유치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수리 요구를 들어주는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전월세상한제로 전세보증금을 최대 5%밖에 올려받지 못하게 됐고, 이 때문에 매매시장에서도 '전세 낀 매물'이 투자자들로부터 갈수록 외면받게 되자 집주인들이 수리비 등을 세입자들에게 전가하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일부 집주인들 사이에서는 전세계약이 끝난 집 상태를 꼼꼼히 살펴 세입자로부터 원상복구비를 최대한 받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임대인들이 욕실, 거실, 침실, 현관, 주방, 발코니 등 50여가지 품목의 원상복구비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임대 퇴거세대 원상복구비' 목록표를 돌려보며 원상복구비를 얼마나 청구할 수 있는지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

임대차법에 따른 이 같은 비용전가 및 주거의 질 저하 문제는 이미 예상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지난 2011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전월세상한제 도입에 대한 정책제언' 보고서에서도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면 중장기적으로 임대주택사업의 수익성이 하락해 신규자본의 유입이 감소한다"며 "이에 따라 임대주택 공급이 줄고 (집주인들의) 유지관리 노력이 저하돼 공급되는 주택의 품질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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