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전=뉴스1) 조소영 기자,김승준 기자,심영석 기자 =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의 이 모 교수가 자율주행 자동차 핵심 기술(라이다·LIDAR)을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로 지난달 14일 구속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과학 인재 양성과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는 과학기술연구 수행을 위해 설립된 국립 특수 대학인 KAIST가 국가핵심기술을 중국에 빼돌렸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2년 전 국민청원을 통해 이미 '공론화'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미연에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더하다.
한국 최고의 과학연구 산실인 KAIST에 몸 담았던 이 교수는 어떤 일들을 거쳐 법정까지 서게 된 것일까. 또 KAIST는 왜 이 교수의 기술 유출을 막지 못했던 걸까.
◇이모 교수, 어떻게 재판까지 받게 됐나
KAIST 측은 이번 일을 '이 교수의 일탈'로 정리하려는 분위기다. 최근 <뉴스1>과 직·간접적으로 만난 일부 KAIST 관계자들은 이 교수 사건에 대해 모두 "할 말이 없다"고 언급했다.
여기에는 '학교의 명예가 더 이상은 실추돼선 안 된다'는 뉘앙스가 짙게 배어나왔다.
이 교수 기술 유출 사건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AIST와 중국 충칭이공대가 2015년 개설한 국제교육협력프로그램의 공동 학장으로 재직했던 이 교수는 2017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중국의 '국가 해외 고급인재 유치 계획'에 따른 외국인 전문가로 선발돼 연구 과제를 수행한다. 국가 해외 고급인재 유치 계획, 즉 천인계획에 발탁된 것이다.
천인계획은 지난 2008년 시작된 중국의 해외 우수인재 유치계획 중 하나로, 해외 유학을 갔으나 귀국하지 않는 자국민들이 점차 늘어나는 현상을 개선하는 동시에 우수 외국인 과학자들을 유치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KAIST는 당시 학내 뉴스레터를 통해 이 교수의 천인계획 소식을 알리기까지 했다. 이 교수의 천인계획 참여에 대해 '잘 몰랐다'는 식으로 해명했던 당초 KAIST의 주장과는 배치된다.
더구나 2018년에는 이 일에 대해 KAIST를 향한 민원과 청와대 국민청원이 있었다. 12월19일 이 교수의 이름이 가려진 채 '○○○ 교수 학교 및 국가 규정 위범'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원에 따르면 이 교수는 2016년 2월부터 충칭이공대의 학장으로 해외파견 발령을 받았고 이는 규정에 따라 2년이 기한이었다.
그러나 KAIST는 이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그해 이 교수를 다시 중국으로 보내는 인사발령을 검토했다.
청원인은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교수가 2017년 중국 국가 중앙정부로부터 '천인계획 과제'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중국으로부터 관련 지원으로 약 20억의 경비와 집까지 받았다"며 "다만 내가 알고 있는 현실을 알리자면 요즘 미국 대학교에서는 천인계획을 받은 미국 교수들에게 이 과제를 수행 금지하라는 규정이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 검찰에 따르면 이 교수는 천인계획에 동참했고 또 동참하면서 지급받은 금액은 정착보조금, 연구비 등을 포함해 1910만 위안, 한화 약 33억원에 달한다. 청원인은 이어 "학교 감사실에 조사를 진행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했지만 아직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민원과 청원을 연이어 받아든 KAIST 감사실은 이 교수의 천인계획 참여 등이 문제가 없는지 자체 검토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기서 '교수가 외부에서 개인적으로 자신의 연구를 하는 것은 상관없다'는 결론을 내버린다. 다만 이에 그치지 않고 학교본부에 '법률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는 공문을 보냈다.
뒤이어 2019년 2월15일 고위급 보직교수들이 이 교수를 따로 불러서까지 이 교수의 연구가 적절한지 따져보는 자리가 열렸지만 결론은 '올해까지 예정된 천인계획 일정을 소화하되 앞으로 다른 주제로 연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미지근한 온도로 정리됐다.
이 자리에선 '천인계획이나 국가핵심기술인 라이다라는 민감한 단어들은 산업부에 제출한 국가핵심기술 판정 신청서에서 빼는 게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나왔다. 결국 이번 사안을 KAIST 측이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 허위 신청을 하라는 제안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라이다'로 적시됐던 최초 신청서는 이후 '라이파이'로 수정된다. 라이파이는 가시광선을 이용해 대용량 데이터를 더욱 빠르게 전송하는 범용 기술로, 이 교수는 '이번에 문제가 된 기술은 라이파이'라며 기술 유출 혐의를 부인하기도 했다.
'라이파이 신청서'는 결국 심의가 통과됐고 KAIST는 이 문제에서 손을 뗐으나, 결국 이 교수는 올해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기술 유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국가정보원에 덜미를 잡히면서다. 국정원은 과기정통부에 이번 사안에 대해 감사를 요청했고 과기정통부는 올해 3월쯤 감사에 돌입해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지난 14일 이 교수를 구속 기소했고 KAIST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 교수는 지난 24일 대전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서 자신을 향한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15일에 열린다.
◇KAIST, 천인계획이 무엇인지 몰랐나
결론적으로 KAIST는 이 교수가 천인계획에 참여하는 것을 알았고 또 천인계획이 중국의 인재 유치 정책 중 하나라는 것을 애초부터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천인계획에 참여한다고 해서 국가 핵심 기술이 유출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사건을 살펴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과거 천인계획은 '중국이 인재를 유치한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고 국가 핵심 기술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우리의 인지가 덜했던 상황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됐던 교내 뉴스레터가 대표적인 증거다.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뉴스레터 '2017 가을호'에는 '○○○교수 중국 정부 The Thousand Talents Plan 선정'이라는 글이 담겨있다. 더 사우전드 탤런츠 플랜(The Thousand Talents Plan)은 천인계획을 뜻한다.
KAIST는 다만 이 교수의 이름이 명시돼 있는데다, 천인계획에 선정됐음을 학교가 자랑스럽게 알린 이 뉴스레터가 부담스러웠는지 이를 지워버렸다. 지난 25일에는 "올해부터 뉴스레터를 더 이상 제작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를 대며 지난 2007년부터 게재돼 있던 뉴스레터 전부를 삭제했다.
대통령 직속 상설 행정위원회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지원하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홈페이지 해외단신란에서도 '중국과학원, 2017년도 우선행동 '백인계획' 글로벌 초빙공고'라는 글이 별다른 제재 조치 없이 게재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과학원이 1994년부터 시행 중인 백인계획은 '매년 최우수 인재 100명을 유치하겠다'는 기조로 추진돼온 인재 확보 정책 중 하나로 천인계획은 백인계획의 확장판으로 불린다. 이는 이 교수, KAIST를 넘어서 사실상 정부에서도 천인계획이 우리에게 어떤 위협이 되고 있는지에 대한 특별한 인지가 없었던 것이라는 방증이 될 수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2013년 당시 펴낸 '중국의 천인계획 연구'라는 보고서를 살펴봐도 우리 기술 유출 우려에 관한 내용은 찾기 어렵다. 보고서는 '한국은 이제 중국에 비해 기술 우위라는 안일한 인식을 버리고 정부가 나서서 인재육성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방위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KAIST 기술 유출 사건을 꼼꼼히 따져볼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20일 한국연구재단 등 53개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국감에는 김정호 KAIST 과학기술전략센터 센터장이 유일한 증인으로 채택됐다. 김 센터장은 2017년 당시 KAIST 연구처장이었다.
다만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유력 총장 후보자인 김 센터장에게 이번 일을 덮어 씌우려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어 또 다른 논란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김 센터장은 내년 1월 중 결정될 KAIST 제17대 총장 후보 중 한 명으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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