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반 헤일런, 프레디 머큐리 모두 동양계 모친 둬
후두암으로 6일(현지시간) 타계한 록음악의 혁명가이자 천재적인 기타리스트인 에디 반 헤일런은 퀸의 프레디 머큐리와 여러모로 닮았다.
동양인의 피를 물려 받은 점부터 록음악에 클래식 음악적인 색깔이 녹아 있었다는 점이 비슷하다. 또한 두 명 모두 유럽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점도 유사하다.
또한 팝음악의 황제인 마이클 잭슨과도 반 헤일런과 프레디 머큐리는 모두 친했다. 반 헤일런은 1983년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비트 잇’에 게스트로 참여해 현란한 기타 실력을 과시하면서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오르는데 기여했다.
반 헤일런은 후일 퀸의 멤버였던 브라이언 메이와 공동 음악작업을 했다.
반 헤일런의 부모는 인도계인 퀸의 프레디 머큐리처럼 동양인의 피를 물려 받았다. 195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반 헤일런은 인도네시아인 어머니 유지니아와 클라리넷과 색소폰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인 아버지 얀의 영향을 일찍부터 받았다.
반 헤일런 가족은 1962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되는데 대서양을 건너는 여객선에서 아버지 얀이 악기 연주를 했으며 휴식 시간에는 에디와 형 앨릭스도 피아노를 연주해 승객들을 즐겁게 했다.
프레디 머큐리는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를 오페라에서 따왔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 정착한 반 헤일런 형제는 정기적으로 피아노 교습을 받아 콩쿠르에 입상하는등 음악 소질을 일찌기 보였다. 머큐리는 피아노 연주가 수준급이라는 점이 유사하다.
그후 에디는 드럼 세트, 형 앨릭스가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으나 형제는 서로 다른 악기에 더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형제간 악기 맞바꿈은 그후 세계 록음악에 한 획을 긋는 계기가 됐다.
초등학교때 학교에서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기 시작한 반 헤일런 형제는 패서디나 시립대학교 재학 중 보컬리스트 데이비드 리 로스, 베이스 주자 마크 스톤(후에 마이클 앤서니로 교체)과 함께 그룹 맘모스를 결성했으나 이미 다른 밴드명으로 사용되는 것을 알고 이름을 딴 반 헤일런으로 바꿨다.
1976년 로스앤젤레스의 클럽에서 연주하던 반 헤일런의 운명은 록그룹 키스(Kiss)의 진 시먼즈의 눈에 들어오면서 바뀐다. 이들의 잠재력을 본 시먼즈는 데모 테이프를 녹음했으며 음반회사 워너브러더스의 프로듀서들의 제안으로 음반 취입 계약을 하게된다.
1978년 발매된 데뷔 앨범 ‘반 헤일런’은 에디 밴 헤일런의 존재를 알리면서 전자기타 연주 뿐만 아니라 록음악에 혁명을 일으켰다. 특히 기타를 피아노 치듯이 두 손가락으로 두들기는 ‘핑거 태핑(finger tapping)’으로 연주한 1분42초 연주곡 ‘이럽션(Eruption)’은 그후 수많은 기타 매니아들이 모방을 시도하는 곡이됐다. 데뷔앨범 ‘바 헤일런’은 지금까지 1000만장 이상이 팔린 록의 명반으로 꼽힌다.

반 헤일런은 전자기타 뿐만 아니라 피아노 수업을 받은 기량을 발휘해 신시사이저까지 연주한 앨범 ‘1984’를 발매해 ‘점프’로 밴드 사상 첫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이 앨범도 1000만장 이상 팔리면서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
미국 연예종합지 롤링스톤은 에디 밴 헤일런을 100대 위대한 기타리스트 순위 8위에 올렸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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