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나이키 신발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생산하는 창신INC가 창신그룹 정환일 회장 자녀가 최대주주로 있는 도매업체 서흥에 300억원을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38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공정위는 창신그룹이 경영난에 빠진 해외 계열사를 동원해 정 회장의 자녀 회사에 정상가격의 2배를 웃도는 수수료를 지급했다고 판단했다. 특히나 이번 사례는 창신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과도 연결돼 있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공정위는 창신INC의 지시하에 해외 생산법인들이 서흥을 부당지원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385억원을 부과하고 교사자인 창신INC를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13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창신INC는 나이키로부터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신발을 위탁받아 제조하는 업체다.
서흥은 2004년 12월 정환일 창신그룹 회장 자녀들을 최대주주(지분율 99%)로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됐다. 이후 2008년부터 창신그룹의 자재 구매대행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창신INC의 해외생산법인들은 나이키 신발 제조에 필요한 자재 가운데 국내 생산 자재에 대해선 서흥에 구매를 위탁하고, 구매대행 수수료를 지급해왔다.
공정위는 "태광실업 등 대부분의 국내 신발 OEM·ODM 제조사들은 그룹본사에서 직접 자재 구매대행 업무를 하고 있어 창신그룹의 경우는 이례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또한 공정위에 따르면 창신INC는 2013년 5월 해외생산법인을 대상으로 서흥에게 지급하는 신발 자재 구매대행 수수료에 대해 7.2%의 추가수수료를 얹어서 지급할 것을 지시했다.
창신INC의 지시를 받은 해외생산법인들은 2013년 6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약 7%포인트(p) 인상된 수수료율을 적용해 서흥에 총 4588만달러(534억원)의 구매대행 수수료를 지급했다.
공정위는 "같은 기간 서흥에는 구매대행 관련해 수행하는 역할의 변화나 추가적인 비용 투입 등 수수료를 인상해 받을 사유가 되는 어떠한 사정 변경도 존재하지 않았다"며 "해외생산법인들은 완전자본잠식, 영업이익 적자 등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과 같은 수준의 구매대행 업무에 대한 대가로 약 3년에 걸쳐 기존의 수수료에 비해 현저히 유리한 조건의 수수료를 서흥에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생산법인들은 서흥에 2013년 6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정상가격 대비 2628만달러(305억원) 많은 과도한 대가를 지급했다"며 "서흥에게 지급된 구매대행 수수료(4588만달러)는 정상가격(1960만달러) 대비 2.3배에 달하는 규모이며, 지원금액 2628만달러(305억원)는 같은 기간 서흥 영업이익(687억원)의 44%에 달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서흥이 직·간접적으로 속한 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질서가 저해됐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아무런 경쟁 없이 초과이윤을 누리는 서흥의 독점적 지위가 강화되고 잠재적 경쟁사업자의 시장진입을 봉쇄하는 등 경쟁제한 효과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공정위는 이와 관련,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385억18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구체적으로 Δ창신INC(152억9300만원) Δ창신베트남(62억7000만원) Δ청도창신(46억7800만원) Δ창신인도네시아(28억1400만원) Δ서흥(94억6300만원) 등이다. 또한 창신INC에 대해선 고발 조치하기로 했다.
특히나 이번 사례는 창신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과도 연결돼 있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서흥은 2011년 6월부터 창신INC의 주식을 꾸준히 매입해왔다. 그러다 2012년말에는 유동성이 매우 악화됐다.
공정위는 "서흥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창신INC의 기획·지시 하에 2013년 6월부터 해외생산법인들을 통한 지원행위가 실행된 것"이라며 "이렇게 확보한 유동성을 이용해 서흥은 지원행위 기간 중에 창신INC의 주식을 매입해 2대 주주로 등극하게 됐다"고 했다.
서흥이 2015년 4월 정 회장과 전 임원들로부터 586억원어치 주식 9만9455주(30.14%)를 매입해 창신INC의 지분 46.18%를 확보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2018년말 기준으로 정 회장(47.25%)과 서흥(46.18%)의 보통주(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를 제외한 주식) 지분은 93.4%에 달했다. 이 밖에 정 회장의 배우자 박향심(4.03%), 자녀 정동흔(0.61%)·정효진(0.61%)·정효영(1.33%) 등이 보통주를 보유했다.
창신INC는 2018년 9월 서흥과의 합병을 검토하기도 했으며, 만약 두 회사가 합병하면 창신INC의 최대주주는 정 회장에서 그 아들이자 서흥의 최대주주인 정동흔으로 바뀌는 상황이었다는 게 공정위의 지적이다.
공정위는 "만일 그룹회장 자녀가 창신INC의 최대주주가 된다면 5000만 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서흥을 통해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우량회사의 경영권을 얻게 된다"고 했다.
아울러 "이번 부당지원 건은 그룹본사의 기획·지시 하에 해외계열사를 동원해 회장 자녀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한 행위를 엄중 제재한 최초의 사례"라며 "중견기업집단이 높은 지배력을 보이는 시장에서 부당지원을 통해 공정거래저해성을 초래하고 부의 이전효과를 낳은 중견기업집단의 위법행위를 확인·시정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