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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이 시대에 명예롭게 살아가기

[여의나루] 이 시대에 명예롭게 살아가기
폴스타프:명예가 떨어져 나간 다리를 복구시켜줄까? 아니지…. 상처의 아픔은 가시게 해줄까? 어림없지. 그럼 명예란 게 외과의사만큼의 수완도 못 가졌나? 그렇지…. 그러니 나는 명예 따위는 필요 없어. 요컨대 명예란 묘비에 새겨진 비문(碑文)에 불과하니까.

핫스퍼:오, 할 왕자야. 너는 내 청춘의 명예를 박탈해 갔어. 허망한 생명이야 아까울 것 없지만 무사로서의 명예를 빼앗기는 게 너무나 원통해.

할 왕자:그럼 고이 잘 가거라. 그리고 너의 명예를 하늘까지 끌고 가거라!

셰익스피어의 사극 '헨리 4세'에 등장하는 핫스퍼와 폴스타프는 극명하게 다른 시각에서 "명예"를 바라본다. 첫 번째 인용에서는 명예가 밥 먹여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폴스타프가 전쟁을 앞두고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명예를 비웃고 있다. 그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은 체하여 남의 시체 옆에 누워있는가 하면, 심지어 할 왕자가 죽인 적장 핫스퍼의 시체를 들고 와서는 자신이 죽였다고 허위 공적을 주장하는 뻔뻔스러운 존재다.

두 번째 인용은 명예를 하늘 끝까지 끌고 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명예만을 생각하는 핫스퍼가 할 왕자와의 결투에서 패하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나눈 대화다. 핫스퍼는 죽는 것보다 결투에 패해 명예를 잃는 것을 원통해한다. 그는 목숨을 개의치 않고 오로지 명예만 추구하는 전형적인 중세적 인물이다.

명예는 과연 핫스퍼처럼 목숨 걸고 사수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명예를 공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폴스타프처럼 자신의 이익과 안위만 추구해도 될까. '도덕'이나 '윤리'의 정의와 기준도 시대와 사회의 현실에 따라 달라지듯, 인공지능(AI) 시대이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인 오늘날의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도 '명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침략을 물리치느라 목숨을 바친 이순신 장군의 삶,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도 못한 채 아프리카 수단의 원주민들을 위해 학교와 병원을 세워 헌신한 고(故) 이태석 신부의 고귀한 삶. 분명 이들은 명예스러운 삶을 사신 분들이고, 그런 분들 덕택에 나라가 유지되고,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웠다.

물론 오늘날도 이런 영웅적 결단과 자신의 안위를 버리고 헌신하는 분들이 반드시 그리고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민사회인 지금은 '명예'가 어떤 특별한 사람이나 특수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민 모두가 명예의 주인공이자 사회의 주인이다. 명예는 그렇게 나라를, 세계를 구하는 거창한 것만이 아니다. 이 시대에는 시민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공동의 이익에 동반하는 자세가 바로 명예로운 삶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다른 사람의 감염을 염려해 버스도 타지 않고 2시간 넘게 걸어갔다거나, 지구환경을 걱정하며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위험을 무릅쓰고 생명을 구하는 소방공무원이나 방역복을 입고 근무하는 의료진까지 모두 명예롭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 시대에 명예롭게 산다는 것은 핫스퍼처럼 무모하게 목숨을 바치는 것도 아니고, 폴스타프처럼 자신만을 위해 뻔뻔한 행동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각자가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가 하는 이 행동이 나와 이웃에게 아름다운 일인가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명예로운 삶이다.

변창구 경희사이버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