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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위기의 WTO와 국제통상의 미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22 18:00

수정 2020.10.22 18:00

[여의나루] 위기의 WTO와 국제통상의 미래
2019년 한국 경제의 무역의존도가 줄었다. 3년 만에 최저치다. 대외충격으로부터의 취약성 때문에 우리 경제의 과도한 대외의존도는 정책적으로 고심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국내 소비 여력이 커지고 내수 시장이 활성화되어 나타난 결과라면 반길 일이다. 그만큼 경제의 구조적 안정성이 커졌다는 의미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의 결과는 작년 수출이 전년 대비 10% 이상 감소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무역의존도 하락 뉴스가 반갑지 않은 이유다.

이러한 수출 부진과 무역 감소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6년 이후 세계적으로 무역 성장세가 둔화되고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보호무역주의의 부상, 유가 하락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자유무역에 대한 불신과 국내 정치적 이유 등으로 자유무역에 대한 반감, 반세계화 정서의 확산과 탈세계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국제협력을 이끌어내야 할 세계무역기구(WTO)가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무역자유화와 개발을 목표로 2001년 출범한 도하 라운드 협상이 사실상 실패한 가운데 WTO의 사법 기능인 분쟁해결기구마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1995년 WTO가 출범한 이후 20여년간 국제 분업과 무역의 급증으로 세계화가 진전을 이룬 바 있다. 한편, 국가 간 무역분쟁은 현재까지 596건에 달한다. 문제는 무역분쟁의 건수가 증가한 것보다 분쟁해결기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WTO가 출범하면서 그 전신인 GATT 체제에 비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분쟁해결기구의 창설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상소기구의 정상적 작동을 위해서는 적어도 상소위원 3명이 있어야 정족수가 되는데 현재는 7명 정원 중 단 한명만이 남아 있고 그마저도 올해 말이면 임기가 만료된다. 분쟁해결기구의 기능 정지는 미국의 반대로 새로운 상소위원 임명에 제동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WTO 사무총장 결선에 진출했다. 11월 초에 최종적으로 차기 WTO 사무총장이 결정될 예정이다. 최초의 한국인 사무총장이자 WTO 사상 첫 여성 사무총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지난 8월 아제베도 사무총장의 조기 퇴임으로 공석이 된 WTO 사무총장 선거 초반부터 이번에는 아프리카 차례라는 지역안배론이 돌면서 8명 중 3명의 후보가 아프리카에서 나온 가운데 선전한 결과다. 평상시라면 지역 안배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어느 지역 출신보다는 위기의 WTO를 구해낼 적임자가 필요한 시기다. 유럽의 EUI가 전 세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차기 사무총장의 자격 요건을 조사한 설문의 결과도 위기 돌파를 위한 능력과 정치적 리더십에 방점을 찍고 있다.

강대국의 일방주의적인 통상압박과 보호무역주의가 횡행하는 가운데 코로나 팬데믹은 글로벌 통상 환경에 큰 불확실성과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그만큼 WTO의 역할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오히려 그 기능이 전반적으로 상실된 지금 새로운 사무총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WTO는 164개 회원국으로 외연이 크게 확대된 반면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과 중국 등 개도국 간의 대립이 심화되고 회원국 간 이견으로 인해 디지털 전환처럼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다자무역협상의 합의나 의제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WTO 중심의 다자무역체제 개혁과 회원국 간 신뢰 회복 및 기능 복원을 위해 능력과 의지를 겸비한 후보가 차기 사무총장으로 선출되기를 기대한다.
글로벌 통상의 미래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미래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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