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과학

약물 담는 분자그릇 만들었다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02 10:39

수정 2020.11.02 10:39

IBS 김기문 연구단장 연구팀, 5.3㎚ 분자 다면체 개발
분자들 스스로 조립되는 특성 활용해 제작 가능
주령구 모양으로 약물·항체까지 담아낼 수 있어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은 포항 방사광가속기에서 진행된 엑스선 회절(X-ray diffraction) 실험을 통해 분자 주령구의 구조를 원자 수준에서 분석했다. 합성된 분자 주령구의 크기는 5.3㎚로 현재까지 보고된 캡슐 모양 분자들 중에서 가장 큰 크기를 기록했다. IBS 제공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은 포항 방사광가속기에서 진행된 엑스선 회절(X-ray diffraction) 실험을 통해 분자 주령구의 구조를 원자 수준에서 분석했다. 합성된 분자 주령구의 크기는 5.3㎚로 현재까지 보고된 캡슐 모양 분자들 중에서 가장 큰 크기를 기록했다. IBS 제공
[파이낸셜뉴스] 국내 연구진이 약물을 담아 치료부위에 전달할 수 있는 분자그릇을 만들어냈다. 이 분자그릇은 신라시대 전통 놀이기구인 14면체 주사위 '주령구' 모양이다.
연구진은 이 분자 그릇이 바이러스처럼 내부에 인슐린과 같은 약물을 저장하고 전달하는데 쓰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기문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장은 분자 스스로 조립하는 특성을 활용해 속이 빈 육팔면체 모양의 거대분자를 합성했다고 2일 밝혔다. 크기는 5.3㎚로 지금까지 보고된 수많은 분자 다면체 중 가장 크다.

분자 다면체는 레고 블록 같은 여러개 분자가 결합해 이룬다. 특히 속이 빈 분자 다면체는 약물을 내부에 저장 및 전달하는 약물 운반체, 광촉매 등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연구진은 이 분자 다면체가 약물 운반체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합성된 분자 주령구 내부에 막대기처럼 긴 전도성 분자를 담았다. 전도성 분자의 크기는 4㎚로 지금까지 이 정도 크기의 분자를 케이지 내부에 담은 시도는 없었다. 보통 약물은 2㎚, 항체는 5㎚ 크기다.

2015년에 약 3㎚로 만들었던 분자 다면체를 이번 연구에서는 기존보다 지름이 1.8배 큰 분자 다면체로 만든 것이다. 공동 제1저자인 구재형 연구원은 "거푸집을 만들고, 분자 조각들을 꿰맞추는 등 복잡한 단계가 필요했던 기존 합성법과 달리, 분자들이 스스로 조립되는 특성을 활용해 간단하게 제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주령구의 독특한 모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우선, 주령구의 형태를 재현하기 위해 구성 분자의 길이와 각도를 정밀하게 설계했다. 이후 분자의 자기조립 특성을 활용해 12개의 사각형 포피린 분자와 24개의 굽은 막대기형 분자로 구성된 '분자 주령구'를 합성했다.

연구진은 포항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분자 다면체의 정확한 구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분자 주령구가 단백질에 버금가는 거대한 크기이며, 속이 빈 육팔면체 구조임을 원자 수준에서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광촉매로서의 활용 가능성도 확인했다. 빛을 쬐면 전자를 내어주는 포피린의 특성을 이용해 화합물을 호두나무의 뿌리에서 방출되는 천연물질인 주글론으로 변환시켰다.

김기문 단장은 "분자 주령구는 내부 커다란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응용을 기대할 수 있는 만큼, 생물학적 응용에 필요한 안정성 확보 연구를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연구진은 조금 더 복잡하고 크기가 큰 다면체의 합성에 대한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켐' 10월 28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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