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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구글 제재 앞두고 제도 정비…한국형 '데이터룸' 만든다

오은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02 12:00

수정 2020.11.02 12:00

(출처=뉴시스/NEWSIS) /사진=뉴시스
(출처=뉴시스/NEWSIS)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본격적인 구글 제재를 앞두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절차 마련에 나섰다. 자료 제출자가 동의하지 않은 자료도 피심인에게 공개할 수 있도록 제한적 공간에서 자료열람을 할 수 있는 '한국형 데이터룸'을 만들겠다는게 첫 번째다. 기업(피심인)의 절차적 방어권을 보장하면서 자료 제출자의 영업비밀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증거자료에 대한 열람·복사의 방법 및 절차를 상세히 규정한 '자료의 열람·복사 업무지침' 제정안을 마련해 오는 22일까지 20일간 행정예고한다고 2일 밝혔다.

현행법상 공정위 심의를 받는 피심인은 공정위 증거자료에 대해 자료 제출자의 동의가 있거나 공익상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열람과 복사를 허용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피심인이 열람과 복사를 요구하는 방법이나 기업 요구에 따른 공정위의 결정 기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된 바가 없어 어려움이 있었다.
실제로 한화와 하림 등 일부 기업들은 일감 몰아주기 제재심사와 관련해 총수일가 이득 산정 자료를 공개해달라며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공정위는 이번 행정예고를 통해 제한적 자료열람실 제도, 즉 한국형 데이터룸을 도입하고 열람·복사와 관련된 일련의 업무 절차를 규정한 지침안을 마련했다.

먼저 제한적 자료열람실(데이터룸) 도입을 통해 영업비밀을 보호할 수 있도록 했다. 제한적 자료열람이란 공정위가 열람의 주체, 일시, 장소, 방법 등을 정하여 제한된 상태에서 영업비밀 자료를 열람하게 하는 방식을 말한다.

공정위는 "영업비밀은 사업자의 영업활동에 대한 정보로서 경쟁사업자에게 공개될 경우, 해당 기업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완전 공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제한된 방식 및 인원에게만 열람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형 데이터룸은 EU 경쟁당국의 형태를 따랐다. EU는 자료 제공자의 비밀 보호 필요성을 존중하면서 피심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데이터룸을 활용하고 있다.

공정위는 제한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자를 피심인이 아닌 피심인의 외부 변호사로 한정했다. 즉 공정위의 허가를 받은 피심인의 외부 변호사가 최대 2주 이내의 범위에서 주심위원이 정한 일시에 공정위 내에 마련된 제한적 자료열람실에 입실해 자료를 열람하도록 한 것이다.

제한적 열람실에 입실할 때에는 제한적 자료열람실 이용규칙 준수 서약서 및 비밀유지서약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또, 제한적 자료열람실에서는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반입·반출이 통제되는 등 엄격히 관리된다. 변호사는 증거의 존재 및 내용을 확인하고 증거와 행위사실간의 관련성 및 심사보고서에 담긴 정량 분석의 정확성 등을 검증할 수 있으며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열람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다.

다만 열람보고서에는 영업비밀이 직접 기재될 수 없으며 주심위원은 영업비밀이 포함되지 않았음이 확인해야 한다.

자료를 열람한 외부 변호사가 영업비밀 자체를 다퉈야 하는 등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영업비밀을 직접 기재한 비공개 열람보고서를 작성하여 공정위에 제출할 수 있다.

열람·복사 관련 업무절차 /사진=공정위 제공
열람·복사 관련 업무절차 /사진=공정위 제공


이어 지침안은 피심인이 심사보고서에서 공개되지 않은 자료에 대해 열람·복사 요구를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요구 서식을 마련했다. 지침안에 따르면 기업은 기업의 정보 및 사건명, 요구 자료, 요구 사유, 제한적 자료열람 시 열람 필요 기간과 열람할 자의 정보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기업이 제출한 서면이 불충분한 경우 공정위는 보완을 요구할 수 있고, 요구받은 날부터 5일 이내 보완하지 않는 경우에는 열람·복사가 불허 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또 공정위는 기업의 요구가 들어오면 자료제출자에게 기업에 대한 자료 공개에 동의하는지,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사유가 무엇인지 의견을 제출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이어 주심위원은 자료의 내용 및 성격에 따라 열람·복사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 때 주심위원은 피심인이 공정위에 열람·복사를 요구한 날부터 30일 이내(10일의 범위에서 연장 가능) 결정해야 한다.

비밀유지의무도 부과했다. 지침안에 따르면 제한적 자료열람 시 영업비밀이 유출되지 않도록 자료를 열람한 외부 변호사는 피심인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도 영업비밀을 누설할 수 없으며, 피심인도 자료를 열람한 변호사에게 영업비밀을 제공받거나 제공을 요구할 수 없도록 했다.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한 자에 대해 공정위가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를 요구할 수 있고 공정위 소속 공무원도 위반자와 접촉이 5년간 금지된다.

안병훈 공정위 심판총괄담당관은 "현재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법안이 올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내년 5월에 시행이 돼 공백을 메꾸기 위해 행정예고를 먼저 한 것"이라며 "앞으로 있을 구글 제재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두고 제도적인 것들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절차적 하자 등 여러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글 제재 뿐 아니라 평소 열람 복사 요구가 많고, 또 대부분 소송으로 가다보니 절차 지연 등 악용 사례가 많았는데 이번 지침안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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