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故이건희 회장의 명복을 빌며

김서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02 18:04

수정 2020.11.02 18:04

[기자수첩] 故이건희 회장의 명복을 빌며
"별세했다, 발인했다. 딱 두 가지만 보도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고 이건희 삼성 회장 장례식장 취재 이후 만난 친구와의 대화는 자연스레 유가족의 사생활 문제로 넘어갔다. 누군가의 죽음에 있어 부음기사 이상의 내용을 담은 보도가 필요할까 하는 논쟁이었다.

4일장 내내 장례식장에서 소위 '뻗치기' 취재를 한 나는,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그 '누군가'가 다른 누구도 아닌 대한민국 1등 그룹 총수이고,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조문을 오는데 아무리 사생활 영역이라도 보도를 해야 하고 그럴 만한 공적 가치가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럼에도 나랏일을 하는 사람만이 공인(公人)이라는 친구의 한 마디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대다수 취재진의 예상과 달리 영결식 장소에서 유가족의 눈물을 포착했을 때, 나는 직업적 의무를 다했다고만 생각했다. 아버지를 잃은 자식의 슬픔을 안타까워하기는커녕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자식들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내기 바빴다. 반성한다.

'이 회장 타계 이후 일련의 보도들이 사인(私人)의 인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언론인으로서의 죄책감이 느껴졌다.

고인의 마지막 뜻이었던 조용한 가족장은 실현되지 못했고, 철저히 통제됐던 빈소 내부는 정치인의 SNS를 통해 강제 공개됐다. 이재용 부회장의 미성년자 자녀는 언론을 통해 얼굴이 공개되며 세간의 관심이 쏟아졌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 총수 일가는 공인 성격이 강하다곤 하지만, 공인의 사적인 정보도 알권리 영역에 일정부분 속하는지, 속한다면 어디까지 보도를 허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판단해야 맞다.

하지만 이 회장의 죽음, 그로 인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사실이다.
아버지 유산을 물려받는 이 부회장이 내야 할 상속세가 11조원에 달한다는 소식에 상속세를 없애달라는 국민청원 글이 올라오는 한편,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을 차단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게 이를 방증한다. 그래도 모든 존재의 죽음 앞에서 숙연한 마음을 갖는 건 인간의 도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seo1@fnnews.com 김서원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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