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시민의 선택을 받는 게 책임정치에 더 부합한다"며 원칙 번복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문제의 당헌 96조 2항은 문재인 대통령이 5년 전 당 대표일 때 정치개혁 차원에서 여론을 좇아 도입했다. 이를 한 번도 실천하지 않다가 이번에 당원과 유권자의 선택권 존중을 핑계로 고친 것이다. 공당으로서 '승리를 훔치지 않겠다'는 당당함을 보여주긴커녕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셈이다. 오죽 명분이 약했으면 이번 전 당원 투표율이 당헌상 성립기준인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26.35%에 그쳤겠나.
내년 4월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보선을 치르면 막대한 국민세금과 행정력을 투입해야 한다. 이에 대한 귀책사유는 민주당에 있다. 하지만 여당은 두 전임 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 적도 없다. 외려 여당 측은 박 시장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부르고, 최근 국감장에서 사건을 규명하려는 야당 측의 질의를 방해하려는 듯한 행태까지 보였다.
애초 민주당 지도부가 서울·부산 시장 후보를 낼 생각이었다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심판받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게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당원투표라는 꼼수를 동원하는 위선은 덜 부각됐을 법하다. 물론 이낙연 대표는 이날 무공천 원칙 번복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박 전 시장 사건의) 피해 여성께도 다시 사과 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입에 발린 백 마디보다 공당으로서 실천적 책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민주당은 최소한 이번 보선에 소요되는 비용 838억원 중 일부라도 결자해지 차원에서 떠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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