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최진숙 칼럼] 시진핑의 야망, 인민의 한숨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04 18:00

수정 2020.11.04 18:00

신화가 된 혁명, 자본에 맹종
가려진 진실, 오늘날의 중국
옌롄커 "세계의 거대한 걱정"
[최진숙 칼럼] 시진핑의 야망, 인민의 한숨
"날은 더워졌는데 눈이 내렸다. 세월이 병들었다." 지금 중국에서 가장 폭발력 있는 작가 옌롄커의 소설 '레닌의 키스'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름에 갑자기 눈이 내린 바러우산맥 장애인마을 서우훠. 해결사로 등장한 현장 류잉체는 보통 캐릭터가 아니다. 혁명과 출세에 목숨 건 류는 러시아가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레닌 시신 관리비로 고민이 많다는 신문기사를 본 뒤 무릎을 쳤다. 레닌 시신을 사서 훈포산에 안치하리라. 이제 이곳은 전 세계 사람들이 관광을 위해 미친 듯이 찾는 세계적인 명소로 우뚝 솟으리. 황당무계한 이 아이디어로 그는 승승장구한다.


서우훠 장애인들의 신기한 묘기를 본 류는 흐뭇했다. 레닌 시신 인수대금 걱정은 내려놓는다. 장애인 묘기단을 꾸려 세계 방방곡곡을 돌며 돈을 모으자고 호소한다. "시신만 안치하면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몰려올 거예요. 여관을 차리겠다면 방에 비가 새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침대에 이나 벼룩 같은 게 있다 해도 괜찮을 것이고, 여관에 묵은 사람이 다리가 부러진다 해도 밀려드는 손님들을 주체할 수 없을 겁니다. 앞으로 천국 같은 날들이 여러분 머리 위로 펼쳐질 거예요."

마오쩌둥 시절 최악의 대기근 등 온갖 재난을 다 겪고 반혁명 길을 걷는 홍군 출신 마즈오 할머니의 필사적인 반대도 이 흐름을 꺾지 못했다. 하지만 떼돈을 벌긴 하나 한 푼도 손에 쥐지 못한 채 마을로 되돌아가는 사람들, 시신 구입은커녕 정치정신과 처방을 받는 류. 실은 이 모두에 중국의 지금 현실이 있다. 광적인 혁명사유가 중국을 이끌었고, 개혁개방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기반이 출세와 통제의 수단이 되고 있으며, 더불어 금전만능의 유토피아가 지금 중국의 새 동력이 됐다고 작가는 말한다. 혁명의 신화, 자본을 향한 맹종, 왜곡되고 가려진 역사의 진실 모두를 겨냥했다. "세월이 정신착란을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미친 짓이다."

시진핑 주석은 최근 6·25전쟁을 미국의 북침으로 규정하며 중국의 참전을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이라고 말해 우리에게 심한 충격을 안겼다. 중국 인민은 침략자를 때려눕힌 것이라며 의기양양했다. 대명천지에 머잖아 미국을 제치고 국내총생산(GDP) 세계 1위가 될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세상 모두가 아는 팩트를 뒤집어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 충격적이었고, 이에 입도 뻥긋 못하는 우리 정부 행태도 충격이었다. 그들 패권을 위해 멀쩡한 우리 역사에 대놓고 분탕질을 치는데도 우리 정부는 왜 이리 말이 없나.

앞서 중국 네티즌들은 방탄소년단(BTS)이 6·25전쟁 중 미국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한 수상 소감에 분개했다. 중국군의 희생은 왜 말하지 않았느냐며 불매운동을 선포했는데 외신을 접한 다른 나라 사람들도 기겁했다. 이런 나라가 건국 100년이 되는 2049년 세계 최강국을 확신하며 전력 질주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보통의 인민들 삶은 고난이다. 14억 인구 중 6억명의 한달 수입이 1000위안(약 17만원) 이하라고 폭탄발언한 이가 리커창 총리다. 그런데도 내년 전 인민이 풍족하게 사는 '전면적 샤오캉'이 달성될 것이라는 시 주석 레퍼토리는 관영언론을 통해 무한반복 재생된다.

옌롄커는 산문집 '침묵과 한숨'에 이렇게 썼다.
"과거 혁명 때는 부조리함과 잔혹함으로 인류 전체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중국은 망각이 기억을, 허위가 진실을 이긴다.
지금 중국은 세계의 태양이자 빛인 동시에 세계의 거대한 걱정이자 어두운 그림자인 것 같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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