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오늘도 2만원 못 채웠네요" 택시업계, 불법 사납금 '여전'

김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07 08:00

수정 2020.11.07 07:59

'기준금' 명목 아래 사납금 횡행하지만 해결은 '난망'
5일 오전 한 시민이 서울역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에 오르고 있다. /사진=조윤진 인턴기자
5일 오전 한 시민이 서울역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에 오르고 있다. /사진=조윤진 인턴기자

[파이낸셜뉴스] #.택시 기사 이모씨(59)는 3일째 회사가 정한 '사납금(일일 납부금)'을 채우지 못했다. 주간조인 이씨가 하루에 채워야 하는 금액은 12만7500원. 코로나19로 고객이 줄어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는 날이 허다해졌다. 전날에는 11시간 꼬박 일하는 동안 12만원밖에 벌지 못했다. 미처 채우지 못한 7500원은 이번 달 월급 120만원에서 차감된다.
이씨는 "지난 달에도 사납금을 다 못 내서 월급을 80만원 밖에 못 받았는데 이번 달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택시업계의 '사납금 제도'에 코로나19까지 덮쳐 택시 기사들의 한숨은 깊어져 가고 있다.

택시 회사의 '사납금' 제도는 법인 소속 기사가 회사에 매일 고정 금액을 납부하는 제도다. 벌이가 좋아 사납금을 납부하고 남은 돈은 기사가 수익으로 챙기는 구조다.

이 제도는 택시 기사들의 부담을 높이고 불안정한 수입을 야기한다는 주장에 올해부터 폐지됐다. 그러나 업계에선 여전히 남아있다. 정부는 기존 사납금 형태의 행위에 대해 지자체와 합동조사를 통해 엄정처분을 예고했지만 현실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는 실정이다.

코로나로 손님 줄었는데 사납금은 '제자리'
7일 택시 업계에 따르면 택시 회사의 사납금 혹은 사납금 명목의 '기준금' 액수는 지난해와 동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주간조(새벽 5시~오후 5시) 사납금은 약 12만원, 야간조(오후 5시~새벽 5시) 사납금은 약 14~15만원 선이었다.

문제는 코로나19로 경기가 어려워 지면서 고객이 지난해보다 줄었다는 점이다.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는 건 택시 기사들의 '일상'이 됐다. 야간 사납금이 14만7000원이라는 한 택시 기사는 "회사 야간조 인원이 50여 명인데 어제 사납금을 다 채운 사람이 절반도 안 됐다"며 "회식도 줄고 경기도 어려운데 누가 택시를 타려하겠냐"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택시 기사들은 "지금이 '양반'"이라며,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때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A택시회사 소속 기사 신모씨(51)는 "(거리두기 2.5단계 때는) 기준금보다 5만~6만원이나 못 채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신씨는 "야간조는 자정 넘으면 적용되는 할증이 핵심인데 밤 9시면 식당이 다 문을 닫으니 어떻게 채웠겠냐"며 "그때 회사가 조금 깎아준다는 말은 돌았지만 실제론 달라진 게 없었고 마스크조차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결책 안 보이는 '전액관리제' 관리
택시업계에서는 지금도 '당연하게' 사납금 제도가 적용되고 있다.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지난 1월 1일부로 사납금 제도가 폐지되고 급여 형태의 '전액관리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0년도 임금협상 과정에서 '월 415만원'이라는 '기준금' 제도가 꼼수로 들어왔다. 월 415만원을 회사에 입금하기 위해서는 한 달 출근일수인 26일을 기준으로 봤을 때, 하루에 15만9000원을 벌어야 하는 셈이다. 현재 택시 기사들이 납부하고 있는 사납금 평균치보다도 높은 금액이다.

그러다 보니 택시 회사 입장에선 전액관리제 하의 기준금을 적용하지 않고 지난해처럼 사납금을 납부하는 것이 곧 금액을 감면해주는 꼴이 됐다.

반대로 택시 기사들이 회사 측에 코로나19 국면에 맞게 사납금을 낮춰달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준금을 그대로 적용한 채 올해 임금 협정대로 하면 상황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회사는 "원래 맺은 대로 하겠다"며 월 415만원 입금을 요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사납금과 다를 바 없는 '기준금' 제도에 대해 이미 불법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기준금'을 둘러싸고 '유사 사납금'이란 논란이 일자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운송수입금이 기준액에 미달하더라도 임금에서 공제하지 않아야 하며, 기존 사납금제와 같은 형태는 불가하다"는 지침을 내린 바 있다.

그러면서 "제도 시행시기에 맞춰 지자체와 합동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불법사항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처분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지금 이뤄지고 있는 것은 없다. 2020년도 임금협상이 오히려 택시 기사들에게 '독'처럼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시행된 전액관리제는 앞으로 도입될 '완전월급제'의 과도기 단계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완전월급제는커녕 전액관리제도 유야무야됐다.

전국택시노동조합 서울지부 관계자는 "국토부가 기준금이 불법이라고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지금 정부나 지자체 어디에서도 제대로 단속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사납금제 폐지 이전처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그는 "회사에서 교섭을 통하든지 대표자들끼리 만나든지 해서 어려운 지점을 서로 논의하자고 하지만 따라주지 않는 택시 회사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jo@fnnews.com 조윤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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