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지난해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적인 활약을 남긴 배우 장혜진(45)이 또 다른 엄마의 얼굴로 돌아왔다. 앞서 '기생충'에서 기우·기정의 엄마 충숙과 '우리들' 속 엄마로 분해 현실감 넘치는 연기를 펼치며 깊은 인상을 남긴 장혜진이 영화 '애비규환'(감독 최하나)에서는 딸 토일(정수정 분)과 갈등을 겪는 엄마 '선명'으로 분했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애비규환'은 똑 부러진 5개월 차 임신부 '토일'(정수정 분)이 15년 전 연락 끊긴 친아빠와 집 나간 예비 아빠를 찾아 나서는 설상가상 첩첩산중 코믹 드라마다. 장혜진이 맡은 토일의 엄마 선명은 냉철하고 화끈한 성격으로, 토일이 갑자기 임신을 알리자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 뉴스1과 만난 장혜진은 극중 선명과는 사뭇 다른, 유쾌한 웃음과 함께 이번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처음 '애비규환' 대본을 받고 읽었을 때 정말 재밌고, 쏙쏙 읽히더라고요. 대본 자체에서 템포감이 느껴지다 보니 장면이 눈에 그려지기도 했어요. 이렇게 연기하면 좋겠다는 상상도 됐죠.(웃음) 최근에 내부 시사회 했을 때 생각보다 더 재밌게 나온 장면이 많아서 우리끼리 좋아하기도 했어요. 온라인에서 반응도 다 읽어봤죠."
장혜진은 화끈한 성격의 '선명'을 맡아 토일의 임신 발표에 화를 표출하며 갈등을 겪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는 "원래는 자유분방한 호훈 엄마(강말금 분) 역을 하고 싶었는데, 주위에서 '선명'이 꼭 나여야 한다고 하더라고요"라며 "그렇게 대본을 읽었는데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아서, 이것 때문에 선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역할을 택하게 됐죠"라고 했다. 이어 "사실 저는 선명처럼 냉철하지 않고 수더분한데, 냉철하고 화를 삼키는 선명이 어려웠어요"라며 "감독님과 계속 얘기하면서 '선명이라면 어땠을지 생각하자'고 하며 캐릭터를 만들어갔죠"라고 덧붙였다.
토일의 엄마인 선명은 최환규(이해영 분)과의 이혼 후 지금의 남편인 김태효(최덕문 분)을 만나 재혼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선명이 왜 남편이 둘이 됐는지 생각하며 접근했어요. 영화 보시면 아시겠지만, 첫 남편은 외모가 특출나지만 가정을 지키지 못했단 것이 잘못이었고, 현 남편은 정말 다정해요. 선명이 이혼과 재혼을 통해 극과 극을 택한 것인데, 그 마음가짐에 집중했어요. 사실 선명도 그 시대에는 진취적인 캐릭터였을 거예요.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이 선명이 주체적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고, 토일이는 또 주체적으로 더 당당한 선택을 한 것이에요. 마지막에 결국 선명이가 '그래'라고 답하는 것에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겼다고 봐요."
모녀로 호흡을 맞춘 정수정에 대해선 "(정)수정이가 사람에 대한 편견, 선입견이 없고 지레짐작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성격이더라고요"라며 "제가 나이 든 선배라 거리를 둘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편하게 다가왔어요, 저도 편하게 대해주긴 했지만, 수정이가 절 편하게 느꼈기 때문에 서로가 편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라며 웃었다. 이어 "사실 처음에는 '아이돌 에프엑스 크리스탈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지나니까 바로 토일이가 됐더라고요"라며 "외모는 아이돌이었는데, 마음은 이미 배우였고 준비가 돼 있었죠, 털털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였어요"라고 회상했다.
앞서 밝혔듯, 장혜진이 '애비규환'을 택한 결정적인 이유로 꼽히는 장면은 바로 영화의 마지막 신이다.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좋은 게,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는 걸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죠.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신선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느껴요. 제가 어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걸 깨준 장면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에 입었던 슈트는 의상 실장님이 발품을 팔아가면서 준비한 옷인데, 정말 마음에 들어서 부산국제영화제 무대인사 때 그 옷을 입고 가기도 했어요.(웃음)"
이처럼 여성 서사 영화인 '애비규환'에 대해 장혜진은 "어느 순간 사라진 여성 서사 이야기들이 다시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것 같고, 독립영화에서 상업 영화로도 서서히 넘어오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이제는 단순히 시의성을 넘어서 여러 이야기가 공존하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왔으면 좋겠어요,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고, 여러 영화가 많이 나와 취사선택할 수 있게 됐으면 해요"라고 강조했다.
장혜진은 1998년 영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으로 데뷔했으나, 이후 9년여의 시간을 연기와 떨어져 살았다. 그러다 '밀양'(2007)을 통해 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된 그는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2016)에 이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제가 9년 정도 쉬고 돌아왔는데, 이런 제 모습을 보고 후배들이 용기를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쉬었다가 다시 돌아와 도전하겠다는 후배들을 봤어요. 사실 제가 특출난 사람도 아니고, 뭐 하나 내세울 건 없지만 이런 모습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좀 더 선하고 좋은 마음으로 임하려고 하죠. 쉬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을 땐,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돌아와서 잘 된 것은 아니었지만 힘든 상황에도 버텨나갔고, 그러다 '우리들'이 들어왔고, '기생충'도 왔어요. 그만두려고 하니까 계속 오더라고요. 참 감사하고 그대로 즐겁게 했어요. 그래서 전 영화 규모는 상관없어요. 정말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중요해요."
장혜진은 '기생충'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세상이 친절해진 느낌이고, 현장 가서 달라진 것도 느끼지만 이건 다 작품 덕을 본 것이죠"라며 "사실 제가 달라진 건 없고, 바빠지긴 했지만 마음가짐은 늘 똑같고,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기준은 똑같아요. 지금 뭔가 잘 맞아가는 게 감사하고 행복하고 행운인데, 개인적으로는 연기할 때 앞선 모습에서 넘어선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죠"라고 강조했다.
지난 2월 아카데미 무대를 밟은 순간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때 너무 떨려서 속눈썹도 떨어졌어요. 하하. 내심 국제장편영화상은 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기생충'이 들리니까 믿을 수 없었죠. 그런데 앞에서 올리비아 콜맨이 '오늘 네 날이야, 얼른 나가서 즐겨'라고 하더라. 다른 배우들도 '너네한테 투표했어'라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우리가 올라가는데, 거기 있던 배우들이 더 기뻐하고 좋아하더라고요. 정말 꿈같고 감사한 일이었어요."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오가는 장혜진은 현재 드라마 '산후조리원'에 출연 중이며, 오는 12월 방송될 드라마 '여신강림'에도 출연한다. 특히 '산후조리원'을 통해 호평을 얻고 있는 터.
"'산후조리원' 반응도 정말 감사한 게,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이런 사회적인 압박감이 힘들었을 텐데 이런 이야기들이 대놓고 나오지 않았어요. 물론 드라마화되면서 극적으로 표현됐지만, 실제 이야기가 바탕이 됐죠. 사실 엄마들이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이 쉽지도 않고, 그 이후에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그게 너무 작은 일처럼 치부되고 있잖아요. 이 드라마를 통해서 어떤 소통의 장이 생기고, 엄마가 이래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모습대로 괜찮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아요."
끝으로 장혜진은 "항상 끝이자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임해요, 매번 할 때마다 이 작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 쏟아버리려고 해요"라며 "하루살이처럼, 다 불태워서 해버리고 나면 오히려 다시 시작할 일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늘 작품 끝내고 나면 다시 시작하게 돼요"라며 활짝 웃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