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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석 칼럼] '강남언론'의 첫 출범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18 18:00

수정 2020.11.1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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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협 회원사 중 1호 기록
강남언론문화 창달 호기
[노주석 칼럼] '강남언론'의 첫 출범
서울은 깊고도 넓다. 그러나 한강 남쪽 강남의 지적 토양은 척박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강의 기적'은 강남 개발사의 다른 이름이다. 강남은 1970년대 산업화와 함께 긴 잠에서 깨어난 신천지였다.

강남은 대중문화 공화국이다. 전 세계가 열광한 '강남스타일'의 고향이다.
'강남좌파'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2006)과 '강남좌파'(2011)에서 '우파처럼 살며, 좌파처럼 생각하는(live right, think left)' 이중적 인간군상의 민낯을 그렸다. 미국의 '리무진 진보주의', 영국의 '샴페인 사회주의', 프랑스의 '캐비어 좌파'가 유사 그룹이다. 강남좌파는 강남에 거주하는 오피니언리더의 일부다. 일종의 생활적 우파, 사상적 좌파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강남은 언론출판문화의 불모지대이기도 하다. 한국기자협회 조사에 따르면 서울 소재 회원사 74개 중 절반인 37개가 종로와 중구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방송사와 신생 매체 등이 영등포구 여의도와 마포구 상암동 등지에 드문드문 둥지를 틀었을 뿐 대부분의 언론기관이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인 강북 사대문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이 조사에서 공신력 있는 강남 소재 언론기관이 '제로(0)'라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교육방송(EBS)이 17년의 강남구 도곡동 생활을 접고 경기도 일산으로 떠난 2017년 이후 강남에는 기자협회 회원사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BS가 언론사라기보다 교육기관에 가깝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100년을 훌쩍 넘긴 한국 언론사의 비정상적인 지형을 보여준다.

출판은 또 어떤가. 전국에 산재한 8000여개의 등록 출판사 중 절반이 넘는 4400여개가 서울에 있지만, 이 역시 구시가지에 몰려 있다. 강남구·서초구·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에는 800여개 남짓하다. 그나마 인문·사회 계통 출판사는 드물다. 대중문화 중심의 실용서적 출판사가 대부분이다.

반면 부의 강남 쏠림은 예사롭지 않다. 부동산은 논외로 치더라도 한국 경제력의 절반 이상이 서울 등 수도권에 편중돼 있고, 이 중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정보통신, 벤처, 스타트업과 금융의 강남 집중은 극심하다. 국내 10대 그룹 중 삼성, 현대차, 롯데, GS 등 4대 그룹이 강남으로 본사를 옮겼다.

언론출판문화의 강북 종속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적으로 강남지역의 언론 DNA는 만만치 않았다. 본래 서울의 기원은 강남이다. 고구려 주몽의 셋째 아들 온조는 강남(위례)에 한성백제(BC 18~AD 475)를 세웠다. 강남은 조선 최대의 필화사건인 '양재역 벽서사건'의 현장이었다. 1547년(명종 2년) 양재역(말죽거리)에 나붙은 한 장의 대자보가 정미사화를 촉발시켰다. 당시 강남은 단순한 교통요지가 아니라 조선팔도에 뉴스를 퍼트리는 언로(言路)의 중심지였다.

창간 20주년을 맞은 경제종합일간지 파이낸셜뉴스가 강남에 입성한 제1호 언론기관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이달 초 여의도에서 강남대로변 사옥으로 이전하면서 첫 강남언론사의 깃발을 꽂았다.
강남경제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늦은 감이 있지만 본격 강남언론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 의미를 둘 만하다. 강남이 언론출판문화의 맹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난 기념일이기도 하다.
향후 제2, 제3의 언론기관이 강남에 진출, 강남언론문화 창달에 이바지하길 기대한다.

joo@fnnews.com 노주석 에디터 정치 경제 사회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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