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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관님 대신 ‘잭’"… 수직관계 깬 정부조직 ‘벤처’ 바람 분다 [재미있는 행정이야기]

안태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19 17:27

수정 2020.11.19 17:27

<4>벤처형 조직
희망 부처별 선발 거쳐 총 20곳
2년간 장차관 직속으로 편성운영
"예산작업 등 일반업무에서 배제
한 업무 집중하며 전문성 길러"
"사무관님 대신 ‘잭’"… 수직관계 깬 정부조직 ‘벤처’ 바람 분다 [재미있는 행정이야기]
국립기상과학원 이혜숙 인공지능예보연구팀장은 지난 2월 한 달간 직원들과 함께 기상청 예보관실로 출근했다. 제주도에 위치한 과학원이 아닌 서울 본청 근무를 자청한 것이다. 주간·야간으로 나눠 기상 예보관들과 함께 근무했다. 이들은 예보관 업무를 돕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축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분초를 다투며 예보 업무를 이어가는 예보관들에게 전화나 문서로 소통하는 것보단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직접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이 팀장은 "함께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업무 애로사항들을 전해주셨다"며 "250여개의 개선 사항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예보연구팀의 업무 수행 방식은 일반 공무원 조직과는 다르다. 팀원 모두가 한 달씩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공무원 조직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일이다. 이처럼 자유롭게 필요한 업무를 선택해 몰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벤처형 조직' 제도가 있었다.

1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현재 정부에는 총 20개 벤처형 조직이 꾸려져 정부 혁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벤처형 조직은 희망 부처별 선발을 거쳐 2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일종의 프로젝트팀이다. 구체적인 행정수요가 명확히 눈에 보이는 경우에만 조직을 신설하는 정부 조직의 특성 탓에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최종 선정된 팀은 부처 정원 외 4급 자리를 추가로 확보해주고 2년 간 장·차관 직속 팀으로 편성해준다. 삼성의 '씨랩(C-Lab)', 구글의 '엑스랩(X-Lab)' 등 민간 사내벤처를 벤치마킹한 것.

이 팀장은 "탄력적인 업무가 가능한 벤처형 조직 덕분에 (전 팀원의 본청 한 달 근무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작년 7월 꾸려진 이 팀은 수치모델 연산속도를 2.5배 높이고 강수유무 예측정확도도 당초 목표를 넘어선 93%를 달성했다.

단순히 조직 형태만 벤처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행동 방식이나 조직의 구조도 민간의 벤처형과 닮았다.

대표적으로 국토부 미래드론교통담당관 서정석 사무관의 경우 팀원들과 영어 이름을 부른다. 팀원은 총 4명이다. 수평적인 구조에서 각자의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데다 해외 기관을 자주 접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착된 문화다.

서 사무관은 한 가지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점을 벤처형 조직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보고 업무, 예산 작업, 국회 대응 등 일반적인 업무에서 배제된 덕에 실제 벤처기업처럼 발로 뛰면서 전문가들이나 기업을 만나 전문성을 쌓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조직은 정부 차원의 드론교통관리체계 마련과 드론택배·택시 상용화에 힘쓰고 있다.

이어 그는 "신기술, 신산업분야인 터라 엊그저께 이야기했던 내용이 갑자기 뒤바뀔 때도 있다"며 "신산업 분야는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한창섭 행안부 정부혁신조직실장은 "공직사회에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혁신 아이디어가 사장되지 않고 국민을 위한 정부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벤처형 조직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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